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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이야기

‘시각장애인’이 아닌 ‘우리’를 위한 책

‘시각장애인’이 아닌 ‘우리’를 위한 책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은 지난해 점자감각책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를 발간했다. 천연기념물 동물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 책은 일반 독자와 시각장애인 독자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일러스트와 소개 글은 일반 책과 다르지 않지만, 페이지마다 점자가 담겨있고 동물의 이름과 울음소리, 설명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펜이 세트로 구성된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를 시작으로 취약 계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가진 의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강정훈 학예연구관과 국립시각장애교육지원센터 김인희 센터장이 함께 이야기 나눠보았다.

 


점자 기호는 천연 재료로 만든 점자 구슬을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읽는 책

강정훈 학예연구관(이하 강) 자연문화재연구실은 자연 유산에 대한 조사, 연구,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로, 2007년 자연 유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설립된 천연기념물센터와 함께 탄생했습니다. 2년 전 천연기념물센터의 관람객 현황을 조사하던 중 취약 계층의 방문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시각장애인은 14년간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센터의 운영 방식이 가진 문제인가 싶어 다른 15개 박물관 및 전시관의 현황을 확인하였는데,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방문은 1% 이하 혹은 전무했죠. 이때 처음 센터 내에서 문제의식이 대두되었고, 시각장애인에게 자연 유산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김인희 센터장(이하 김) 국립시각장애교육지원센터는 2018년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맹학교 내에 소속된 하나의 부서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이 일상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점자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소리활용컴퓨터, 확대독서기 등의 보조 기기도 다룰 수 있어야 하죠. 우리 센터를 그런 기술의 교육을 지원합니다. 특히 기술 습득의 기회가 적은 일반 학교의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위하여 토요학교, 방학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담을 준비하여 센터의 여러 연령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요. 아이들이 박물관, 전시관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례로, 석굴암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고 중요한 모든 영역이 유리로 막혀 있어 느낄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박물관, 전시관도 비슷한 상황이죠. 그런 경험이 학생들에게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을 주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점자감각책을 만들며 그 부분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자연 유산의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한계를 느낀 것이죠. 또 기존 점자책이 대부분 점자로만 구성되어 비장애인들은 읽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대상으로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책과 소리펜을 세트로 구성했습니다. 동물 일러스트 페이지를 펜으로 찍으면 동물의 이름과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동물의 모양과 색을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각 동물에 대한 설명은 관련 연구 자료를 각색하여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적었습니다. 해당 페이지를 소리펜으로 찍으면 음성으로 그 내용을 읽어주는데, 그중에는 축구선수 손흥민과 배우 송중기 등 유명인사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이라는 말을 듣고 흔쾌히 참여해주신 거죠. 혹시 소리펜이 고장 나거나 분실되면 책 한편에 마련된 QR 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유명인사들의 목소리는 학생들에게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 같아요.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인데, 좋은 접근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을 많이 접해보았는데,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는 흠잡을 곳 없이 잘 제작된 책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글자’인데요. 많은 분들이 ‘시각장애인은 모두 점자를 활용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시각장애인의 대부분이 5~6급 장애인입니다. 크고 두꺼운 글자는 읽을 수 있는 정도죠. 점자와 묵자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일반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에는 점자를 사용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조금 더 크고 두꺼운 폰트가 사용되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번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를 준비하며 배운 점이 참 많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시각장애인은 모두 점자를 사용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음 책은 조금 더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나아가 저희가 책을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많이 개선한 만큼, 국민 여러분에게도 그런 기회가 되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이 국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매우 뜻깊습니다. 책 발행을 위한 예산이 없어 일부는 저희가 연구비를 아껴 마련하고, 부족한 부분에는 기업의 지원을 받았는데요. AIA생명보험주식회사와 SK C&C가 공동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착한걷기 대국민 캠페인’을 진행하여 100걸음당 1원씩 조성된 기부금을 조성했습니다. 일러스트 또한 국민 공모전을 열어 선정했고, 각 내용을 읽어주는 목소리 또한 모두 국민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전체 장애인의 약 9%를 차지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책을 만들기란 쉽지 않죠. 또 점자책은 제작비도 비쌉니다. 한 명의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교과서 값만 2억 원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인데요. 때문에 기업과 국민들의 지원은 필수입니다. 많은 기업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아쉽습니다.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를 계기로 국가 기관의 주도하에 양질의 자료가 꾸준히 발행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이 촉각 책은 텍스트 설명도 제공하기 때문에 시력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적합합니다.

전 세계 취약 계층을 위한 K-Heritage가 될 때까지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살았던 학생들은 우리나라 또한 다른 나라 못지않은 시각장애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접근 방식에 있어서 다른 나라처럼 ‘유니버설 디자인(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고려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는데요. ‘시각장애인을 위한’이 아닌, ‘모두를 위한’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문화재 안내 팸플릿 등에 크고 굵은 폰트를 사용하면 노인, 시각장애인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촉각을 활용한 팜플렛을 만들면 시각장애인과 아이들 모두 즐길 수 있고요. 사용자를 넓히면 예산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수요가 많으니 장기적인 운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요즘 공공도서관에 장년층을 위한 큰 글자 책이 마련되어있는데,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답니다.

 이번 점자감각책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좋습니다. 타 분야로도 확대되면 좋겠다는 요청에 따라 고고학을 주제로 한 점자감각책을 제작 중이고요. 문화유산 분야에서도 시리즈로 내년에는 미술 문화재, 그다음 해에는 건축 문화재 등 연도별 계획을 가지고 준비 중입니다. 다음 시리즈에는 말씀해주신 의견을 반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역 박물관의 어린이 합창단이 책 녹음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점자 구슬 설치 중

또한 이번 점자감각책 사업을 진행하며 천연기념물센터가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년 국민참여예산으로 20억 원 정도를 확보하여 취약 계층이 센터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점자감각책을 활용하여 찾아가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후 센터에 방문하여 몇몇 샘플을 손으로 직접 만지거나 해설을 들으며 경험하는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또 아직 구상 중인 단계입니다만, 얼마 전 어린 관람객을 대상으로 주니어 도슨트 프로그램을 제공했는데, 같은 눈높이를 가진 또래 아이의 설명을 듣는다는 점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시각장애인분들도 같은 시각장애인 도슨트에서 해설을 들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실제로 국내에 문화재 해설자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있습니다. 박물관 및 전시관에서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너무 좋겠죠. 사실 같은 시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상황이 각양각색이라 모두 만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실용적인 오디오 서비스를 개발하여 시각장애인들이 해설사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되어도 박물관 및 전시관을 찾는 시각장애인들이 훨씬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또 시각장애인들이 디지털 취약 계층은 아닙니다. 음성으로 정보를 읽어주는 컴퓨터 등을 능숙하게 다루는 아이들이 많아요. <천연기념물 동물 이야기>에 삽입된 QR코드처럼 스마트폰 등을 활용하여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점자, 청각, 촉각 등을 다채롭게 활용한 공간이라면 저도 꼭 학생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도 한국의 자연유산은 물론, 우리나라가 취약계층을 위해 이처럼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세계와 함께 하는 K-Heritage인 거죠. 내년에는 영어, 중국어 등 많이 사용되는 언어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만들어 대사관 등을 통해 배포해보고자 합니다.


 어떠한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예산의 허용 내에서, 무엇보다 담당자분들이 너무 소진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올해 이만큼 성과를 얻었다면 내년에는 조금 더 발전시켜보고 그다음 해에도 그렇게,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대담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고 많은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들 모두 이런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설렘과 기쁨, 기대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는 서비스가 될 때까지 잘 운영되면 좋겠습니다.

Text by 강정훈 학예연구관,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김인희 센터장, 국립시각장애교육지원센터

 

출처; http://www.koreanheritage.kr/interview/view.jsp?articleNo=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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