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960년 새마을의 수해 피해에 관한 기사
지난날 현 삼락생태공원은 '새마을'이란 마을 이름으로 6.25 전쟁 때 1952년 11월경 거론되어 휴전 후인 1953년 7월 이후 상이군인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척하며 살고있었다. 하지만 잦은 수해가 발생하여 고난을 겪어왔다.
아래 기사는 1957년과 1960년에 발생한 수해 피해를 입은 새마을 개척단에 관한 기사를 소개한다. 1960년 조선일보에 의거하면 새마을에는 119세대에 805명의 주민이 살고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부산시 철거계획에 의거 1966년 철거 때는 약 180세대 였다는 새마을 출신들의 증언대로 한다면 1966년 철 거 때 주민수는 약 1,200여명으로 추정된다)
새마을에는 일찌기 1600년 초 김녕김씨유두문중이 세세대대로 거주한 내력이 있었다. 세조에 의해 역적 집안으로 몰린 사륙신이었던 백촌 김문기의 증손이자 입향조인 김영필(金永弼)이 이곳에 숨어 살며 터를 잡았던 것이다. 그 후 1930년대 초 일제는 이른바 낙동강일천식 공사로 시행하면서 1931~2년경 주민들을 퇴거 시킬 때 거주민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일방적으로 진행시켰다. 그래서 주민들은 양산, 구포, 김해, 사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던 내력을 갖고있다.
아래의 기사와 같이 거듭되는 수해를 막기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 1960년대 말부터 년차적으로 삼락동, 괘법동 등지로 주거지를 옮긴바 있으며, 2010년대 4대강 정비 사업 때 현재와 같은 구조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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