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모라3동 이야기 /김찬석
김찬석 사회복지사 입력 2022. 02. 15. 22:30
![](https://blog.kakaocdn.net/dn/crj4KZ/btrwzcuDzcJ/T2Pq3QZCZmC1Y7Wj9sCa61/img.jpg)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부산시 사상구 모라3동이 그곳입니다. 만 2년9개월의 짧은 공직생활 중 구청에서의 3개월을 제외한 전 기간을 모라3동 한 곳에서만 근무했습니다. 다른 곳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모라3동은 복지 측면에서 아주 특별한 동네입니다.
모라3동은 LH아파트 4개 단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개 단지 중 2개는 영구임대이며, 2개는 일반분양입니다. 노인인구가 30%를 넘고, 전체 주민의 39%가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특히 주민의 23%가 등록장애인이라는 점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산동네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니. 일반 주택에 비해 영구임대아파트가 나름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편리하다 보니 많이 입주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는 전동휠체어가 자가용보다 흔합니다. 단일 동에 종합복지관이 3곳(모라종합복지관 백양종합복지관 사상구장애인종합복지관)이나 있고, 사상구 장애인근로작업장까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파트뿐이고, 기업 공장 등 생산시설이 없으니 복지 수요는 넘쳐나는데 지역사회 복지 자원은 빈약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모라3동 지역경제는 수급자들이 받는 수급비가 이끌어간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사회복지공무원에게 모라3동은 복지 교과서입니다. 노인에서 장애인,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다문화가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복지수요를 접할 수 있고 고독사, 알코올 의존증, 저장강박증 등의 문제도 빠지지 않습니다. 단지 내 상가 주변에서 공공연히 술판이 벌어지고, 심지어 수급비를 노린 도박판까지 벌어집니다. 악성 민원도 끊이지 않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담당 직원에게 반말은 물론 욕설과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일이 지금은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없지 않습니다. 술에 취해 찾아오는 경우에는 더 심각합니다.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적지 않고요. 20~30대 초반의 여성 복지직 공무원으로서는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모라3동에서 근무하고 나면 어떤 동으로 전보발령을 받더라도 두렵지 않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반대로 모라3동이 전보 희망부서가 아닌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모라3동은 복도식 아파트입니다. 상당수 가구가 늦봄에서 초가을까지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생활합니다. 그래서 이웃집 현관문이 일주일 이상 닫혀있으면 행정복지센터로 신고가 들어옵니다. 정보 교환도 빠릅니다. 누가 행정복지센터에서 명절 선물세트 등을 받기라도 하며 순식간에 온 동네에 퍼져 항의성 전화가 쇄도합니다. 나는 왜 안 주느냐. 옆집 사람은 받던데…. 예산이나 외부기관으로부터의 후원이 넉넉지 않다 보니 물품이 항상 모자랍니다. 그래서 가능한 골고루 드리기 위해 최근에 받은 적이 있는 분들은 제외하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수급자가 수급비에서 조금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행정복지센터에 조심스럽게 맡기고 가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후원물품을 드리겠다고 하면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많이 받아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주라고 양보합니다. 지원을 당연시하고, 하나를 받고도 하나를 더 달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참으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배우 김혜자 씨 일행이 네팔에 갔습니다. 시골 장터 한 귀퉁이에 웬 아낙네가 조그만 물건 보따리를 펼쳐 놓고 앉아 하염없이 울더랍니다. 김 씨도 그 여인 옆에 앉아 같이 울었습니다. 옷차림도, 피부색도 다른 두 여인이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네팔 여인이 이윽고 옆에 있는 이국 여인네를 보고는 눈물을 훔치며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나중에 일행이 김 씨에게 물었답니다. 왜 그렇게 울었느냐고. 김 씨는 그냥 그러고 싶었답니다.
모라3동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냥 그러고 싶은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옵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고,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도 복지 일선에서 묵묵히 갈 길을 가는 모라3동 행정복지센터 직원들, 그리고 전국의 행정복지센터 관계자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출처: 국제신문 [세상읽기] 모라3동 이야기 /김찬석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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