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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안기생(安期生)


안기생(安期生)

  

삼신산의 고사

독자 여러분도 일찍이 진시황이 서불(徐市), 노생(盧生) 을 파견하여 삼신산(三神山)을 찾게 했다는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신선이 산다는 이 세 개의 산이 바로 봉래(蓬萊), 영주(瀛洲), (方丈) 3개의 섬이다. 동해 밖에 있는데 모두 술병처럼 생겼고 그 위에 수많은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이 신비한 산은 다섯 개였다. 매산 하나마다 세 마리의 어마어마하게 큰 거북이가 등을 바치고 있었다.


총 열다섯 마리 거북이가 다섯 개 산을 받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용백국"(龍伯國)의 거인이 와서 거북이 여섯 마리를 낚시로 낚아갔다. 그 결과 산 두 개가 바다에 떠내려 가다가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때 남아있던 봉래산 등 세 개의 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으나 배를 저어 가까이 다가가 다시 보면 오히려 바다 물밑에 있는 듯했다. 요즈음 사람의 눈으로는 이것을 신기루와 같은 환상이라고 추측할 것이나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해석할 길이 없어 가지가지 전설을 낳았을 뿐이었다.


삼신산을 찾으려 하였으나

진시황은 왜 백성들이 혹사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수만 금의 재물을 세금으로 걷어 한번에 천명 이상의 사람을 파견하여 삼신산을 찾게 하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서책마다 다르다. 혹자들은 서불이 진시황에게 감언이설로 권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혹자는 진시황이 귀곡자(鬼谷子)를 만났을 때 신선이 사는 그곳에 불사초(不死草)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 전국시대에 제나라, 연나라 등의 임금들이 신선들이 산다는 동해 가운데 있는 방장산 등을 찾기 시작했다 한다. 따라서 진시황은 단지 그들의 전례에 따라 했을 뿐이다. 다만 열선전(列仙傳)에는 다른 설명이 있다. 진시황이 삼신산을 찾으려 하는 이러한 배경에는 사전에 어떤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 약속의 상대가 바로 유명한 신선 "안기생"(安期生)이다.


약파는 신선, 천세옹(千歲翁) 안기생

신선 안기생은 산동성 낭야 부향(阜鄕)사람이다. 바닷가 동해 일대에서 약()을 팔았다. 안기생이 파는 약을 사서 먹은 사람은 매우 영험이 있어 당시 그 일대 사람들에게 안기생은 몹시도 숭배받는 대상이었다.


심지어 세간에서는 안기생은 이미 연세가 천세가 넘었다고 소문이 났다. 해서 존칭으로 "천세옹"(千歲翁)으로 불렸다.


당시 중원을 통일하고 천하를 순행하던 진시황도 동해에 도착했을 때 안기생의 고명한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진시황은 안기생을 초청해서 3일 밤낮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진시황의 얼굴에는 커다란 기쁨의 미소가 넘쳤고, 안기생에게 수 천만전의 황금과 값진 구슬을 상으로 내렸다.


이에 안기생은 상으로 받은 값진 보물들을 모두 부향의 역참 내에 남겨두고 말없이 떠났다. 그리고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보답으로 붉은 옥으로 만든 신발을 하나 남겨 놓은 채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시황이 안기생이 남겨놓은 편지를 펼치니 그곳에는 "몇 년이 지난 후 봉래신산(蓬萊神山)으로 나를 찾아오라"고 쓰여 있었다.


진시황, 봉래산을 찾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자

진시황은 장생을 일심으로 추구하다가 불로장생술에 푹 빠졌다. 일찍이 각 지방의 많은 방사(方士)를 찾아가곤 하였다. 이제 다행히 신선 안기생의 허락을 받자 신선과 인연이 닿게 될 것이라 여겼다.


진시황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한 무리의 선단(船團)을 동해로 파견하여 자신이 갈 길을 미리 개척하도록 했다. 그러나 먼저 간 한 무리의 사자들이 "봉래산을 보았으나 다만 배를 해안에 댈 수 없다."고 보고하는가 하면 또 바다 가운데 큰 상어가 있어 부대를 더 많이 보내야 한다고 하는 등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무리의 사자들은 한번 가고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진시황은 이때부터 꼬박 10년을 시도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봉래산을 찾기는커녕 안기생의 얼굴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한무제도 삼신산을 찾았으나

세상에는 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듯이 진시황이 죽고 백년 쯤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다시 안기생을 몹시 만나고 싶어 하는 군주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신선도에 푹 빠진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이다.


한무제는 방사 이소군(李少君)을 불러 신선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소군은 일찍이 동해상에서 "안기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안기생이 그에게 선조(仙棗: 신선들이 먹는 대추)를 주어 먹게 했다. 그러나 안기생은 봉래산 가운데 살고 있는데 성격이 괴상하여 뜻이 맞는 사람은 만나보고, 뜻이 맞지 않으면 숨는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 말에 한무제는 오히려 흥취가 일어나는 듯 몸소 목욕재계하여 제사를 지내고 방사들을 동해로 파견하였다. 수년이 흐르고 방사 이소군도 병들어 더 진척되지 않아 일단락된 사건이 있었다.


천세옹(千歲翁) 안기생의 내력

신선 안기생은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몹시 만나기를 갈구하던 신선이다. 고서적 중에는 안기생을 또 "안기"(安期)선생이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 악의전(樂毅傳)"에서는 악의 가족 중에는 악하공(樂瑕公), 악신공(樂臣公)이 있는데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 황노지학(黃老之學: 도가)의 종사(宗師)라고 한다.


그 가르침의 연원도 기록돼 있다. 하상공(河上公)이 안기생을 가르치고, 안기생이 모흡공(毛翕公)을 가르치고, 모흡공이 악하공을, 악하공이 악신공을 가르쳤다고 한다. 여기서 하상공의 내력에 대해서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조차 그 출신을 모른다고 하였다. 다만 갈홍(葛洪)이 쓴 포박자(抱朴子)에서는 안기생은 수련과 음식, 단약(丹藥) 등에 의지해 장생을 얻었으며 인간세상에서 일 천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혼원성기(混元聖紀)라는 책에는 안기생의 도술이 마명생(馬鳴生)에게 전해져, 마명생, 음장생(陰長生), 갈홍으로 이어지는 일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안기생은 동해상에만 거주한 것이 아니다. 중국 남쪽, 북쪽을 망라한 많은 지방에 그의 종적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하남지방의 어떤 사람은 안기생에게서 큰 대추를 얻었는데, 연이어 3일을 구워야 비로소 완전히 익었다고 한다. 그 향기가 10리를 갔으며 병자가 먹으면 낫는 것은 물론 죽은 자도 먹으면 환생하였고 건강한 사람이 먹으면 백일비승(白日飛昇)한다는 전설이 떠돌았다.


아무튼 안기생은 많은 서책에 등장하고 있는 높은 선비(高士)이면서 도를 닦아 자신을 깊이 감춘 선인이라 추측할 뿐이다.


출처: 홍익정도문화원, http://cafe.daum.net/hongjungwon/ddWa/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