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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사와 청류동천

운수사 대웅전 보물 지정

제목 「부산 운수사 대웅전」 보물 지정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6-03-02 조회수 99
첨부파일 0302 「부산 운수사 대웅전」 보물 지정(붙임2).pdf pdf파일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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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1호「부산 운수사 대웅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96호로 지정하였다.

 

 

 

 

 

  부산 운수사 대웅전은 2013년 전면 해체 수리 때 종도리(宗道里: 건물의 가장 높은 곳인 용마루에 있는 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647년 공사를 시작해서 1655년 완공되었음이 확인되어, 부산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단아한 주심포(柱心包: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것
)계 맞배지붕 건물로, 우주(隅柱:기단 모서리에 세워지는 기둥. 귓기둥 )의 하부에는 기둥 높이의 1/2 정도까지 원형 돌기둥을 세워 목재 기둥을 받고 있다. 이는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일주문 등 부산 동래지역 건축물에서 다수 확인되어, 내륙지방에 비해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은 데 따른 지역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공포-정면

 

공포-배면

 

  건물의 시대성을 볼 수 있는 공포는 배면이 정면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있다. 배면 공포의 소박한 살미(첨차(檐遮)와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걸리는 공포부재를 통칭)와 결구방법은 조선 중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양산 신흥사 대광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동일한 형식이다. 반면, 정면은 후대에 화려한 치장형 살미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공포로 변화된 것으로, 동래향교 반화루, 범어사 종루와 유사한 모습이다. 


  이는 주심포계 익공식(翼工式: 창방과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라는 부재가 결구되어 만들어진 공포형식) 건물이 다포(多包:공포를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열한 것)계 건축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일반적인 익공식 건물의 경우 주두(柱頭: 공포 최하부에 놓인 방형의 부재) 아래의 기둥머리에 초익공(初翼工: 익공을 하나만 사용할 때)을 끼워 공포를 구성하는데, 이와 달리 주두 위에서 구성한 것은 운수사 대웅전만의 큰 건축적 특징이다.
 

 

 

묵죽도

 

  아울러 운수사 대웅전은 창호, 천장, 단청 등이 교체되고 변화되었으나 기본적인 구조는 1655년 최초 건립 당시의 형태와 1771년 고쳐 지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건물에 남아 있는 묵죽도(墨竹圖) 등 4점의 벽화는 창건 또는 18세기 중수 시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운수사 대웅전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종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은 많은 건축 정보를 담고 있는 소중한 연구자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지역 불교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이처럼 운수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 불전의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귀중한 불교 문화유산으로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부산 운수사 대웅전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적극 협조해 나갈 계획이다.



관련 용어


* 첨차()는 도리방향으로 놓인 공포부재로 ''라고도 쓴다. 첨차는 위치와 모양에 따라 달리 부른다. 먼저 위치에 따라 주심상에 있는 첨차와 출목상에 있는 첨차로 구분하여 주심첨차와 출목첨차로 나뉜다. 또 출목은 내외출목이 있으며 5포 이상은 출목이 여러 개이기 때문에 주심을 기준으로 번호를 붙여 준다. 따라서 외1출목첨차, 외2출목첨차, 외3출목첨차 등으로 구분하고 내부도 마찬가지로 내1출목첨차, 내2출목첨차, 내3출목첨차 등으로 구분한다. 첨차는 보통 2층으로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위첨차가 아래첨차보다 길다. 따라서 위첨차를 대첨차, 아래 첨차를 소첨차라고 한다. 그러므로 출목에 따른 위치와 크기에 따른 명칭을 혼합하여 각각 첨차 명칭을 붙여 준다. 즉 외1출목소첨차, 외1출목대첨차, 외2출목소첨차, 외2출목대첨차 등으로 불린다.

첨차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첨차 양쪽면을 수직으로 직절하고 하단을 둥글게 굴린 것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만두를 닮았다고 하여 교두형첨차라고 하며 호형첨차라고도 한다. 교두형첨차는 고려시대를 제외한 전시대에 걸쳐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조선시대 5포 이상의 포식건축이다. 통일신라시대 교두형첨차 유물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회랑에 사용된 첨차 부재와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및 실상사 백장암 석탑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교두형 이외에 옆면은 직절하고 하단은 45도 정도로 사절한 첨차도 사용되었다. 특별히 부르는 명칭은 없다. 백제에서는 첨차 전체를 구름모양으로 조각해 만든 운형첨차가 사용되었는데 한국에 현존하는 것은 없지만 백제건축의 영향이라고 추정되는 일본 호류지 금당과 탑 및 호키지 3층탑 등에서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첨차는 독특하게도 옆면을 비스듬하게 사절했으며 하단은 중괄호형태로 했다. 이를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연화두형첨차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는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을 제외한 부석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등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시대적 특징이면서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지역적 특징이기도 하다. 또 조선시대 말기에는 장식화하면서 첨차를 연꽃 모양으로 만든 연화형첨차도 널리 사용되었다.

고려 중기 이후 수덕사 대웅전과 강릉 객사문 등과 같은 건물에서는 기둥머리에서 보방향으로 반쪽짜리 첨차가 빠져나와 1출목첨차를 받치는 부재가 있는데 이것을 헛첨차라고 한다. 방향으로 보면 헛살미라고 불러야 합당하겠지만 헛첨차로 통용되고 있다. 아마 고려 초기 이전 건물은 첨차와 살미의 모양이 같고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도 무리가 없다고는 생각되지만 개념상 혼동을 초래하고 있다.



부산 最古 목조건축 운수사 대웅전


  • 박부영 기자
  • 승인 2016.03.13 20:24
  •  




보물 지정 받고 전달식, 축하 한마당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운수사 대웅전

 

부산에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판명난 운수사 대웅전이 지난 3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보물 제1896호로 지정받았다. 이를 기념하는 지정서 전달식이 12일 운수사 대웅전 앞에서 열렸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지난 3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1호 '부산 운수사 대웅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96호로 지정했다. 부산 운수사 대웅전은 2013년 전면 해체 수리 때 종도리(宗道里)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647년 공사를 시작해서 1655년 완공되었음이 확인되어 부산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명됐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단아한 주심포(柱心包)계 맞배지붕 건물로, 우주(隅柱)의 하부에는 기둥 높이의 2분의 1 정도까지 원형 돌기둥을 세워 목재 기둥을 받고 있다. 이는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일주문 등 부산 동래지역 건축물에서 다수 확인되어, 내륙지방에 비해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은 데 따른 지역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대웅전 앞에서 문화재청으로 부터 보물 지정서를 전달받는 주지 유정스님

 

운수사 대웅전은 창호, 천장, 단청 등이 교체되고 변화되었으나 기본 구조는 1655년 최초 건립 당시의 형태와 1771년 고쳐 지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건물에 남아 있는 묵죽도(墨竹圖) 등 4점의 벽화는 창건 또는 18세기 중수 시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운수사 대웅전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종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은 많은 건축 정보를 담고 있는 소중한 연구자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지역 불교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이처럼 운수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 불전의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귀중한 불교 문화유산으로 역사적ㆍ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비지정 문화재였던 운수사 대웅전은 지난 2003년 태풍 매미에 의해 대웅전 송판이 떨어져 나오면서 감춰졌던 역사가 드러나게 됐다. 송판에는 1683년 기와 중수 1771년 3차 중수 등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대웅전이 예사롭지 않다고 여긴 주지 유정스님이 문화재 당국에 알려 지난 2007년 정밀조사를 거쳐 부산시 유형 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됐다. 2012년부터 해체 복원을 거쳐 이번에 보물 지정을 받은 것이다. 운수사는 “보물 지정 까지는 이성갑 사하구신도연합회장, 정은우 동국대 박물관장, 지역 국회의원, 구청장 그리고 장병주 전 신도회장과 현 신도회장을 비롯한 신도들의 노력과 기도 덕분”이라고 보물 지정 까지의 경과를 밝혔다.
12일 열린 보물지정서 전달식에는 주지 유정스님, 신도회 간부들과 신도, 이 절 신도이며 지역 국회의원인 박민식 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해 보물 지정을 축하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370





위치별 첨차

위치별 첨차

첨차

첨차창경궁 홍화문

연화형첨차

연화형첨차정수사 법당

헛첨차

헛첨차도갑사 해탈문

모양별 첨차

모양별 첨차

교두형첨차

교두형첨차숭림사 보광전

[네이버 지식백과] 첨차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2007. 4. 10., 동녘)



익공식()

익공식()은 창방과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라는 부재가 결구되어 만들어진 공포유형을 말하며 출목이 없다. 익공식은 사용된 익공의 숫자에 따라 세분하는데 익공이 하나만 쓰였을 때는 초익공(), 두 개 사용되었을 경우는 이익공(), 세 개인 경우 삼익공()이라고 부른다. 익공의 끝 모양이 뾰족하지 않고 둥글게 만든 것을 물익공()이라고 부른다.

익공식은 대개 초익공과 창방이 기둥머리에서 직교하여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이익공은 주두 위에서 행공과 직교하여 만난다. 장혀창방 사이에는 소로를 일정 간격으로 배열하여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는 민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민가에서는 대부분 익공을 뾰족하거나 물익공 형태로 만들지 않고 직절하는 데, 이를 직절익공()이라고 한다.

초익공

초익공나주향교 강당

이익공

이익공남한산성 행궁

이익공 투상도

이익공 투상도

초익공 단면도

초익공 단면도

이익공 단면도

이익공 단면도

물익공 단면도

물익공 단면도

직절익공 단면도

직절익공 단면도

물익공

물익공창덕궁 낙선재

직절익공

직절익공안동 충효당

물익공

물익공고창읍성 등양루

[네이버 지식백과] 익공식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2007. 4. 10., 동녘)


 공포

① 수직부재와 수평부재의 원만한 연결(수직적 확장)
목조건축은 기둥과 같은 수직부재와 보나 도리 등과 같은 수평부재가 만나 결구되는 구조이다. 이때 보나 도리는 무한정 길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연결해서 사용한다. 연결은 대개 기둥 위에서 이뤄지게 되는데, 두 수평부재가 그냥 만나면 연결부위가 불안정하다. 그래서 기둥과 수평부재 사이에 받침목을 둔다. 이것이 공포발생의 시초이다. 이 받침목을 한자로는 공()이라 쓰고 한글로는 첨차()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후네히지끼(배모양 첨차)를 사용한 공포가 이 유형에 속한다. 공이나 첨차는 하나만 쓸 수도 있지만 2-3단으로 할 수도 있다. 첨차 사이에 소로()를 끼워 연결하기도 한다. 소로를 끼우면 위아래 첨차가 일정간격으로 고르게 하중을 전달하는 등분포 하중전달방식의 공포를 만들 수 있어서 하중전달에 유리하다. 이를 수직적 확장개념의 공포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공

티베트 타쉬룽포 승원 주변 민가

공

티베트 드레풍 승원

공

안악 2호분

공

일본 헤이죠큐 동원

서역의 받침재

서역의 받침재

처마의 원만한 지지(수평적 확장)
동양권 목조건축은 지붕하부 목조부재의 보호와 일조 등의 환경여건에 적합하도록 처마를 많이 뺀다. 이때 처마를 적절히 지지해주지 않으면 처마가 처지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처마의 지지점을 기둥 밖으로 빼주게 되는데 이를 출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출목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서 마치 선반 까치발처럼 지지목을 받쳐주는데, 이 지지목의 다양한 형태가 공포로 발전하였다.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이며 명쾌한 해결방법은 선반을 매듯이 까치발을 받쳐주는 형태이다. 이러한 까치발 형태의 공포유형은 지금도 네팔 목조건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네팔은 비가 많은 지역으로 우리보다 처마 깊이가 깊어서 우리와 같은 공포로는 처마를 지지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명쾌한 까치발식 공포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까치발식 공포는 시각적으로 볼품없다. 때문에 네팔에서는 여기에 여신들을 조각해 그러한 느낌을 없애려 노력했다.

한·중·일에서는 까치발식보다는 첨차를 기둥머리에 결구하여 수평으로 머리를 내밀어 출목을 받치도록 했다. 이때 첨차는 보방향으로 걸린다. 물론 도리방향으로도 첨차가 놓여 십자로 짜여진다. 따라서 보방향과 도리방향 첨차가 동시에 나타나고 이들이 서로 십자형으로 짜여서 출목을 지지하는 공포가 탄생했다. 이것이 포식()공포의 출발이다. 따라서 공포()는 첨차()로 이루어진 처마 밑을 받치는 덩어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포유형을 분류하는 데 출목의 유무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까치발

까치발

까치발

까치발선반

까치발

까치발네팔 카투만두 사원

출목 개념도

출목 개념도선암사 대웅전

출목

출목부석사 조사당

출목

[네이버 지식백과] 공포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2007. 4. 10., 동녘)

운수사 대웅전 (雲水寺 大雄殿)


운수사 대웅전 (雲水寺 大雄殿)
운수사 대웅전 (雲水寺 大雄殿) 
운수사 대웅전 (雲水寺 大雄殿)
부산 사상구 모라로219번길 173(모라동)
  • 문의처051)310-4066
  • 지정번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 제1896호

  • 운수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계 맞배집으로, 조선 중기 이후 부산 지역에서 유행하던 실용주의적 건축제도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소규모 건물임에도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으로서의 장엄과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2013년 해체수리 과정에서 대웅전 종도리 밑면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서 1655년(효종 6)에 중수(重修)했다는 내용이 확인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부산 지역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운수사 대웅전 건축 당시는 부산 지역에서 건축이 가장 왕성하게 펼쳐지던 시기였고, 운수사의 공역(工役) 여건과 기반도 상당한 수준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이래의 건축법식과 제도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특히 대웅전에서 발견된 묵서명에 보이는 승인 공장(僧人 工匠)과 민간 공장 중에서는 1770년대에 이루어진 범어사 대종(大鐘) 주조 불사, 동래향교 대성전 중수 공사, 범어사 종루 이건 공사 등에도 참여한 사람이 확인되어 18세기 부산 지역 공장(工匠) 연구에도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운수사 대웅전은 부산 지역에서 남아 있는 예가 드물 만큼 잘 정제되고 뛰어난 기법의 목조건물이다. 특히, 조선 중기 이래의 주심포계(柱心包系)를 기본으로 다포계(多包系)와 익공계(翼工系)의 형식도 절충된 특이한 건물로서, 건축사적으로 크게 주목되는 건물일 뿐만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도 뛰어난 소중한 건물이다.
    운수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목조 건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부산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는 어느 것에 비할 바 아니며, 지금의 건물만으로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되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운수사 대웅전 보물 지정…부산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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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funE연예뉴스팀] 운수사 대웅전 보물 지정…부산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랜 역사

    운수사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1호 부산 운수사 대웅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96호로 지정했다.

    부산 운수사 대웅전은 2013년 전면 해체 수리 때 종도리(宗道里)(건물의 가장 높은 곳인 용마루가 있는 부분에 놓이는 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647년 공사를 시작해서 1655년 완공되었음이 확인되어, 부산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단아한 주심포(柱心包)(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것)계 맞배지붕 건물로, 우주(隅柱)(기단 모서리에 세워지는 기둥. 귓기둥)의 하부에는 기둥 높이의 1/2 정도까지 원형 돌기둥을 세워 목재 기둥을 받고 있다. 이는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일주문 등 부산 동래지역 건축물에서 다수 확인되어, 내륙지방에 비해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은 데 따른 지역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시대성을 볼 수 있는 공포는 배면이 정면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있다. 배면 공포의 소박한 살미(첨차와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걸리는 공포부재를 통칭)와 결구방법은 조선 중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양산 신흥사 대광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동일한 형식이다. 반면, 정면은 후대에 화려한 치장형 살미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공포로 변화된 것으로, 동래향교 반화루, 범어사 종루와 유사한 모습이다.

    이는 주심포계 익공식(翼工式)(창방과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라는 부재가 결구되어 만들어진 공포형식) 건물이 다포(多包)(공포를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열한 것)계 건축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일반적인 익공식 건물의 경우 주두(柱頭) 아래의 기둥머리에 초익공(初翼工)을 끼워 공포를 구성하는데, 이와 달리 주두(공포 최하부에 놓인 방형의 부재) 위에서 구성한 것은 운수사 대웅전만의 큰 건축적 특징이다.

    운수사 대웅전은 창호, 천장, 단청 등이 교체되고 변화되었으나 기본적인 구조는 1655년 최초 건립 당시의 형태와 1771년 고쳐 지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건물에 남아 있는 묵죽도(墨竹圖) 등 4점의 벽화는 창건 또는 18세기 중수 시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운수사 대웅전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종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은 많은 건축 정보를 담고 있는 소중한 연구자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지역 불교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운수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 불전의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귀중한 불교 문화유산으로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부산 운수사 대웅전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적극 협조해 나갈 계획이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