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산업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범과 함께 시작하였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의 혼란을 겪고 정치적·사회적 불안정한 상황이 점차 안정되자 정부는 경제자립과 국민 생활 향상을 위하여 경제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첫 단계로서 제1차 5개년계획을 수립하였다. 주요 목표로는 첫째, 자립경제체제의 확립과 공업생산기반의 확충, 둘째, 생산시설의 근대화, 셋째,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지원, 넷째, 고도성장기반으로서의 수출산업 개발 육성, 다섯째, 중소기업 지원의 다각화 등을 설정했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기본방향 설정에 따라 정부에서는 무엇보다도 석유에너지의 안정공급 없이는 이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국가경제의 기간산업으로서, 또한 수입대체산업의 핵심사업으로서 정유공장 건설을 최우선사업으로 채택하였다. 경제성장을 위한 공업화 과정에서는 그에 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될 뿐 아니라, 에너지 수급구조의 개편으로 석탄을 대신할 석유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석유류 공급은 외국법인인 대한석유저장회사(KOSCO)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고, 더구나 AID원조자금에 의지하고 있으면서 고가의 석유완제품만을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원유를 수입, 가공할 수 있는 정유공장의 건설은 외화 절약뿐만 아니라 종래의 통제배급에 따른 소비억제정책을 지양하고 공업화를 위한 안정적 에너지공급체제로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64년 4월 1일 일산 3만 5천 배럴 규모의 국내 최초의 유공(현 SK에너지) 울산 정유공장이 가동을 시작하였다. 정유공장의 가동에 따라 석유의 안정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산업생산은 물론 국민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1960년 초만 해도 주종 에너지원이 석탄이었다. 그러나 경제개발을 위한 산업의 동력원으로서 석유 소비가 급증함에 따라 1962년에 9.8%에 불과했던 석유 소비는 1971년에 50.6%를 차지하여 국내 에너지 소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8년 최고 63.3%까지 이르렀던 석유소비 비중은 차츰 낮아져 2007년 기준 43%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여전히 주종 에너지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자동차 보급의 확대에 따라 수송용 및 석유화학 원료용 석유소비는 계속 늘고 있지만, 산업 및 발전부문에서 LNG로의 연료 전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http://www.petroleum.or.kr/201007/infozone/knowledge/images/1_18_1.jpg)
![](http://www.petroleum.or.kr/201007/infozone/knowledge/images/1_18_2.jpg)
![](http://www.petroleum.or.kr/201007/infozone/knowledge/images/1_18_3.jpg)
![](http://www.petroleum.or.kr/201007/infozone/knowledge/images/1_18_4.jpg) ① 석유산업 연표
<석유산업시대 이전(구한말~60년대 이전)>
-
1880년경 석유를 처음으로 도입 추정
-
1935년(일제시대) 연산 30만 톤 규모의 조선석유 원산공장 건설
-
1949년 1월 대한석유저장공사(미국의 스탠다드, 칼텍스, 쉘 합작투자) 설립으로 석유류 저장·판매 업무 주관
<60년대 정부의 석유정제업 육성>
-
1962년 10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대한석유공사(현 SK㈜) 설립
-
1964년 11월 극동정유(현 현대정유) 석유정제업 허가
-
1966년 4월 럭키·칼텍스(현 LG-Caltex 정유) 사업 개시
-
1970년 4월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 정제업 허가
<70년대 석유위기의 극복>
<80년대 자주적 석유정제업의 성장>
-
1980년 걸프(SK)와 NIOC(S-OIL)의 철수에 이어 1983년 유니온 오일(인천정유) 철수로 자주적 경영체제로 전환
-
원유도입선 다변화, 본격적인 석유비축사업, 석유제품의 품질수준 향상 추진
<90년대 석유산업의 자유화 및 개방화>
-
유가연동제(1994. 2) 및 유가자유화(1997. 1)
-
주유소 거리제한 폐지(1995. 11) 및 판매업·수출입업 자유화(1997. 1)
-
정유사-주유소 간 직거래 허용(1998. 1) 및 정제업 신규진입 자유화(1998. 10)
-
주유소업(1998. 5) 및 정제업(1998. 10)의 전면 대외개방 실시
<1997년 자유화·개방화이후 구조조정 및 법체계 정비>
-
IMF에 따른 수요침체와 수입개방으로 인한 국제석유제품시장으로부터 값싼 제품 유입에 의한 수입사 시장확대로 시장경쟁 심화되고, 정유사 수익성 악화됨.
-
정유부문에서 M&A가 이루어져 현대오일뱅크가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 지분 39%를 취득함.(1999. 9)
-
현대오일뱅크는 UAE 국영투자회사인 IPIC사로부터 5억 달러(지분 50%) 외자 유치함.
-
1999년 11월 쌍용양회는 쌍용정유 지분 28.4%와 경영권을 사우디 Aramco사가 주도하는 콘소시움에 매각하고 2000년 3월 사명을 S-OIL로 개명
-
2001년 9월 인천정유가 법정관리에 들어감.
-
2004년 10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이 제정되어 1970년 1월부터 적용돼온 「석유사업법」을 대체함.
-
2006년 1월 M&A가 이루어져 SK㈜(현 SK에너지)가 인천정유를 자회사로 편입
-
2008년 2월 SK에너지, 자회사인 SK인천정유와 합병 완료
② 정유회사의 발전
●SK에너지
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최우선과제로 정유공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대한석유공사법」을 제정, 같은 해 10월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하였다. 대한석유공사는 미국 걸프사와 자금 및 원유공급계약 등을 골자로 한 계약을 성사시켜 1963년 12월, 울산에 정유공장을 준공하였다.
그후 1960년 후반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 급증으로 시설확장 및 석유화학사업 진출을 위한 투자자금을 걸프의 지분 확대를 통해 조달함으로써 1970년에 회사경영권이 정부에서 걸프사로 넘어갔다. 하지만 1·2차 석유위기로 원유공급능력 악화 등 상황이 불리해지자 걸프사는 대한석유공사 주식 50%를 우리 정부에 인도하고 1980년 8월 한국에서 전면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한석유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주식회사 선경을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선경은 1982년 대한석유공사의 사명을 ㈜유공으로 변경했으며 1997년에 국제화에 발맞추어 SK주식회사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2007년 7월 SK에너지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8년 2월 자회사인 SK인천정유(1969년 설립된 경인에너지가 전신)와 합병을 완료하였다.
●GS칼텍스
GS칼텍스의 전신은 럭키이다. 정부가 1966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제2정유공장 건설의 실수요자를 공모한 끝에 선정되어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호남정유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9년에 여수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그후 확장을 거듭하여 1996년 사명을 LG칼텍스정유 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2005년 3월에는 LG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GS칼텍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S-OIL
쌍용그룹은 석유파동으로 인해 쌍용양회의 B-C유 공급이 끊어져 어려움을 겪자 이란국영석유공사(NIOC)와 50:50의 합작정유공장 건설계약에 합의, 1976년 한이석유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온산에 정유공장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정유공장 완공 전 이란 회교혁명으로 원유공급계약이 파기되자 이란 측 소유주식을 전량 인수하고 1980년에 사명을 쌍용정유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1991년에는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와의 지분참여 계약을 체결하고 중질유 크래킹 센터를 건립하였다. 그후 1999년 쌍용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하였으며 이듬해인 2000년에는 사명을 현재의 S-OIL로 바꾸었다.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의 전신인 극동석유공업㈜은 고급윤활유를 주로 공급해온 회사로서 세계적인 메이저인 로열더치셸과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1969년 상호를 극동쉘석유㈜로 변경했다.
그후 1977년 극동석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하고, 쉘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합작계약이 해지되자 쉘의 지분 50%를 새로운 동반자인 현대가 매입하였다.
1988년에 상호를 다시 극동정유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1989년에 대산 등지에 정유공장을 준공하였다. 하지만 공장 준공 후 심각한 재정난으로 1993년 현대그룹이 극동정유를 인수하게 됨으로써 현대정유주식회사가 탄생하였으며, 2002년 4월에 현대정유에서 현대오일뱅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