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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한국 석유산업의 역사

 

 

 

 

 

 

  18.한국 석유산업의 역사 | 19.석유산업의 현황 | 20.석유제품의 유통 | 21.석유산업과 환경보전 | 22.세계석유산업
1. 석유와의 만남
 
석유는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을까?

조선 후기의 학자 황현의 『매천야록』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석유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서양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바닷속에서 난다고도 하고, 혹은 석탄에서 만든다고도 하고, 혹은 돌을 삶아서 그 물을 받은 것이라고 하여 그 설이 다르다…(중략)… 우리나라에서는 경진년 이후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그 색깔이 불그스레하고 냄새가 심했으나, 한 홉이면 열흘을 밝힐 수 있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고종 17(경진년), 1880년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서양문물에 눈을 뜨던 개화 초기여서 조정에서는 사절단을 미국이나 일본에 파견하여 새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이때 승려 이동인이 개화파인사들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서양문물을 구경하다가 석유와 석유램프, 성냥을 가지고 귀국하면서 이 땅에 처음으로 석유가 상륙하게 된 것이었다.

등유로서의 석유는 처음에는서양기름이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중국이나 일본 상인들이 석유를 소량으로 들여왔는데, 양이 충분하지 않아 상류가정에서나 구입할 수 있었다. 한미수교 2년 뒤인 1884년부터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정식 무역이 이루어지고,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석유를 대량 수입하면서 사정은 변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아주까리나 송진 기름 등잔은 석유 등잔으로 대체되었다. 석유가 이 땅에 들어오자 들판에서 무성하게 자라던 아주까리, 들깨 농사는 깡그리 망했다. 석유는 아주까리나 들깨기름보다도 2배나 더 오래 쓸 수 있는 반면, 값은 훨씬 저렴했다. 편의성으로 인해 사용이 서민층으로 급속히 확대되면서 1890~1900년대 석유는 광목류와 함께 양대 수입품목으로 자리잡았다.

 

개화기의 미국 공사 알렌은 1898년 서울시가에 석유등이 점등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석유등에 의한 최초의 가로조명으로 생각된다. 자동차 연료인 휘발유가 등장한 것은 1908년경이었다. 회국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자동차가 한 두대씩 늘어나자 스탠다드 오일이 휘발유를 들여와 판매했다. 개화로 말미암아 석유문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지만 서구 열강들의 시장 지배도 시작되었다.

 

1897년 알렌은 우리 조정으로부터 이권을 무더기로 따냈다. 이를 통해 당시 미국의 최대 석유회사이던 스탠다드 오일의 석유가 당시로서는 국내 유일의 석유였고 이것을솔표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스탠다드 오일은 인천 월미도에 석유저장소 건립허가를 받아냈고, 그 해 말에 조선 최초의 석유저장탱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월미도엔남산만한 서양 기름통서양 기름선을 구경하기 위해 인파가 밀려들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 미국산 석유만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1902년까지는 미국 석유 외에 일본 석유와 러시아 석유가 판매경쟁을 벌이지만, 미국 석유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와중에 일본 상인들이 질이 떨어지는 일본 석유에다 미국 석유를 몰래 섞어서 판매하는 상표도용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스탠다드 오일이 독점하던 시장은 1920년 이후 미국의 텍사코와 영국의 쉘이 들어오면서 치열한 3파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30년대에 일본이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미국, 영국 등과 마찰을 빚게 되자 석유공급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1934년에 산업물자의 통제와 함께 석유도 6개월분을 미리 보유·비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석유업령을 공포하였다. 또한 대륙침략의 발판기지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한 일본은 1935년 조선석유를 세우고 연산 30만 톤(하루 약 6천 배럴) 규모의 원산정유공장을 건설했다. 1938년 원산공장이 완공된 후 조선석유는 미국에서 전용 유조선으로 원유를 운송해다가 정제했다.

 

그러나 일본이 석유를 국책화하면서 육군의 강력한 지원으로 급속히 육성시키려는 기미를 보이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공급을 제한했고 끝내는 수출금지를 단행함으로써 일본은 석유수급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일본은 재빨리 수마트라, 자바 등을 점령하고 남방석유자원을 확보했지만 선박이 해군용으로 징발되어 남방석유를 실어오는데 필요한 선박 부족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더구나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미국 비행기의 폭격이 강화되어 석유수송은 더욱 어려워져서 원산정유공장은 가동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해방 후 미군은 석유제품의 수입·배급기관으로서 미군정청 석유배급 대행회사(Petroleum Distribution Agency)를 설립하였으며 국내 석유제품 수급은 이 PDA를 통해 군용제품이 공급되었다. 조선석유도 미군정의 관리를 받게 되었으며, 1949년 모든 석유류의 저장과 판매 업무를 주관하는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rea Oil Storage Co, KOSCO)가 설립되었다.

 

미군정 시대에 설립된 KOSCO 1950 6.25 동란으로 스탠다드, 칼텍스, 쉘의 판매회사가 철수함에 따라 직접 판매를 전담하게 되었다. 1955 5월 정부는 점차 늘어나는 석유류 수요에 대비하여 한미 석유운영협정을 체결하여 석유제품의 취급, 저장 및 관리를 규정하게 되었다. 이 협정은 한국, 미국 및 대한석유저장회사의 3자 협정으로 한국이 도입하는 석유류 제품의 외화조달을 미국정부가 보장하고, 3대 메이저에 의해 구성되었던 대한석유저장회사가 석유제품의 인수, 저장, 배급을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64년 대한석유공사( SK에너지)가 그 시설과 업무를 인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 석유산업의 발전사
   

국내 정유산업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범과 함께 시작하였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의 혼란을 겪고 정치적·사회적 불안정한 상황이 점차 안정되자 정부는 경제자립과 국민 생활 향상을 위하여 경제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첫 단계로서 제1 5개년계획을 수립하였다. 주요 목표로는 첫째, 자립경제체제의 확립과 공업생산기반의 확충, 둘째, 생산시설의 근대화, 셋째,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지원, 넷째, 고도성장기반으로서의 수출산업 개발 육성, 다섯째, 중소기업 지원의 다각화 등을 설정했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기본방향 설정에 따라 정부에서는 무엇보다도 석유에너지의 안정공급 없이는 이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국가경제의 기간산업으로서, 또한 수입대체산업의 핵심사업으로서 정유공장 건설을 최우선사업으로 채택하였다. 경제성장을 위한 공업화 과정에서는 그에 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될 뿐 아니라, 에너지 수급구조의 개편으로 석탄을 대신할 석유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석유류 공급은 외국법인인 대한석유저장회사(KOSCO)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고, 더구나 AID원조자금에 의지하고 있으면서 고가의 석유완제품만을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원유를 수입, 가공할 수 있는 정유공장의 건설은 외화 절약뿐만 아니라 종래의 통제배급에 따른 소비억제정책을 지양하고 공업화를 위한 안정적 에너지공급체제로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64 4 1일 일산 3 5천 배럴 규모의 국내 최초의 유공( SK에너지) 울산 정유공장이 가동을 시작하였다. 정유공장의 가동에 따라 석유의 안정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산업생산은 물론 국민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1960년 초만 해도 주종 에너지원이 석탄이었다. 그러나 경제개발을 위한 산업의 동력원으로서 석유 소비가 급증함에 따라 1962년에 9.8%에 불과했던 석유 소비는 1971년에 50.6%를 차지하여 국내 에너지 소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8년 최고 63.3%까지 이르렀던 석유소비 비중은 차츰 낮아져 2007년 기준 43%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여전히 주종 에너지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자동차 보급의 확대에 따라 수송용 및 석유화학 원료용 석유소비는 계속 늘고 있지만, 산업 및 발전부문에서 LNG로의 연료 전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산업 연표

 <석유산업시대 이전(구한말~60년대 이전)>

  • 1880년경 석유를 처음으로 도입 추정

  • 1935(일제시대) 연산 30만 톤 규모의 조선석유 원산공장  건설

  • 1949 1월 대한석유저장공사(미국의 스탠다드, 칼텍스, 쉘 합작투자) 설립으로 석유류 저장·판매 업무 주관

 <60년대 정부의 석유정제업 육성>

  • 1962 10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대한석유공사( SK) 설립

  • 1964 11월 극동정유(현 현대정유) 석유정제업 허가

  • 1966 4월 럭키·칼텍스( LG-Caltex 정유) 사업 개시

  • 1970 4월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 정제업 허가

 <70년대 석유위기의 극복>

  • 1~2차 석유위기 발생에 따른 정부의 위기극복시책 추진 적극 지원

  • 1976 1월 이란국영석유회사(NIOC)와의 합작회사인 한·이석유( S-OIL) 설립

 <80년대 자주적 석유정제업의 성장>

  • 1980년 걸프(SK) NIOC(S-OIL)의 철수에 이어 1983년 유니온 오일(인천정유) 철수로 자주적 경영체제로 전환

  • 원유도입선 다변화, 본격적인 석유비축사업, 석유제품의 품질수준 향상 추진

 <90년대 석유산업의 자유화 및 개방화>

  • 유가연동제(1994. 2) 및 유가자유화(1997. 1)

  • 주유소 거리제한 폐지(1995. 11) 및 판매업·수출입업 자유화(1997. 1)

  • 정유사-주유소 간 직거래 허용(1998. 1) 및 정제업 신규진입 자유화(1998. 10)

  • 주유소업(1998. 5) 및 정제업(1998. 10)의 전면 대외개방 실시

 <1997년 자유화·개방화이후 구조조정 및 법체계 정비>

  • IMF에 따른 수요침체와 수입개방으로 인한 국제석유제품시장으로부터 값싼 제품 유입에 의한 수입사 시장확대로 시장경쟁 심화되고, 정유사 수익성 악화됨.

  • 정유부문에서 M&A가 이루어져 현대오일뱅크가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 지분 39%를 취득함.(1999. 9)

  • 현대오일뱅크는 UAE 국영투자회사인 IPIC사로부터 5억 달러(지분 50%) 외자 유치함.

  • 1999 11월 쌍용양회는 쌍용정유 지분 28.4%와 경영권을 사우디 Aramco사가 주도하는 콘소시움에 매각하고 2000 3월 사명을 S-OIL로 개명

  • 2001 9월 인천정유가 법정관리에 들어감.

  • 2004 10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이 제정되어 1970 1월부터 적용돼온 「석유사업법」을 대체함.

  • 2006 1 M&A가 이루어져 SK( SK에너지)가 인천정유를 자회사로 편입

  • 2008 2 SK에너지, 자회사인 SK인천정유와 합병 완료

정유회사의 발전

SK에너지

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최우선과제로 정유공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대한석유공사법」을 제정, 같은 해 10월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하였다. 대한석유공사는 미국 걸프사와 자금 및 원유공급계약 등을 골자로 한 계약을 성사시켜 1963 12, 울산에 정유공장을 준공하였다.

그후 1960년 후반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 급증으로 시설확장 및 석유화학사업 진출을 위한 투자자금을 걸프의 지분 확대를 통해 조달함으로써 1970년에 회사경영권이 정부에서 걸프사로 넘어갔다. 하지만 1·2차 석유위기로 원유공급능력 악화 등 상황이 불리해지자 걸프사는 대한석유공사 주식 50%를 우리 정부에 인도하고 1980 8월 한국에서 전면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한석유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주식회사 선경을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선경은 1982년 대한석유공사의 사명을 ㈜유공으로 변경했으며 1997년에 국제화에 발맞추어 SK주식회사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2007 7 SK에너지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8 2월 자회사인 SK인천정유(1969년 설립된 경인에너지가 전신)와 합병을 완료하였다.

 

●GS칼텍스

GS칼텍스의 전신은 럭키이다. 정부가 1966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제2정유공장 건설의 실수요자를 공모한 끝에 선정되어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호남정유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9년에 여수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그후 확장을 거듭하여 1996년 사명을 LG칼텍스정유 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2005 3월에는 LG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GS칼텍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S-OIL

쌍용그룹은 석유파동으로 인해 쌍용양회의 B-C유 공급이 끊어져 어려움을 겪자 이란국영석유공사(NIOC) 50:50의 합작정유공장 건설계약에 합의, 1976년 한이석유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온산에 정유공장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정유공장 완공 전 이란 회교혁명으로 원유공급계약이 파기되자 이란 측 소유주식을 전량 인수하고 1980년에 사명을 쌍용정유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1991년에는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와의 지분참여 계약을 체결하고 중질유 크래킹 센터를 건립하였다. 그후 1999년 쌍용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하였으며 이듬해인 2000년에는 사명을 현재의 S-OIL로 바꾸었다.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의 전신인 극동석유공업㈜은 고급윤활유를 주로 공급해온 회사로서 세계적인 메이저인 로열더치셸과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1969년 상호를 극동쉘석유㈜로 변경했다.

그후 1977년 극동석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하고, 쉘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합작계약이 해지되자 쉘의 지분 50%를 새로운 동반자인 현대가 매입하였다.

1988년에 상호를 다시 극동정유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1989년에 대산 등지에 정유공장을 준공하였다. 하지만 공장 준공 후 심각한 재정난으로 1993년 현대그룹이 극동정유를 인수하게 됨으로써 현대정유주식회사가 탄생하였으며, 2002 4월에 현대정유에서 현대오일뱅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석유란 무엇인가? | 2.석유의 특성 | 3.석유의 역사 | 4.석유의 생성 | 5.석유의 매장량 | 6.원유의 종류와 품질 | 7.석유의 탐사와 개발 | 8.원유 및 석유제품의 수송
일반적으로 석유는 천연적으로 산출되는 불에 타기 쉬운 액체(鑛油)로서 이를 정제하여 만들어진 제품을 모두 일컬어 석유(Petroleum)라고 한다. 이것을 화학적 구조로 보면, 탄소와 수소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조합된 무수한 화합물의 혼합체이다. 이 석유를 천연적으로 산출된 것과 이를 정제한 것으로 구별하는 경우, 전자를 原油(Crude Oil)라 하고, 후자를 석유제품(Petroleum Products)이라 한다. 석유제품은 용도에 따라 LPG(액화석유가스), 납사,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윤활유, 아스팔트 등으로 분류된다.

 

처음 석유가 등장하였을 때는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된 등유였고, 난방 및 취사용으로 사용이 확대되면서 상당기간 동안 석유제품의 주종이었기 때문에 등유를 석유로 총칭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가스로 대체되어 거의 찾기 어렵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가정마다 취사용으로 석유곤로를 사용하였으며, 주택가에는석유·얼음을 파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정확히 표현하면 등유였던 셈이다. 이후 석유는 내연기관을 위한 수송용 연료로서 그리고 석유화학공업의 원료로서 역할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그 용도에 맞게 휘발유, 경유, 항공유, 납사 등 여러 종류로 세분화되었다.

 

이처럼 석유는 일상 사용하는 연료는 물론, 각종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소재를 제공하는 등 우리들의 의식주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먼저 석유의 고마움을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의복을 통해서 쉽게 생각해 보자. 만약 인류가 석유화학섬유를 지니지 못했다면, 우리의 의복은 면, , 명주, 양모와 같은 천연섬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의복 재료의 제한적 물량으로 인해서 의복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짐승의 털과 가죽에만 의존하는 겨울철 의복, 신발들을 고집했다면,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부족한 동식물자원의 쟁탈을 위한 국가간의 전쟁도 수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과거 명주, 삼베 옷감에서 발전한 나일론 합성섬유는 편리함과 제작의 용이성을 가져다 준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 이제는 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화학섬유로 된 스타킹을 처음 대하고 신기해 하던 것이 불과 수십년 전의 일이다.

 

또한 거의 모든 의복에 사용되는 지퍼를 보면, 과거에 사용한 지퍼는 알루미늄이나 놋쇠로 가공한 금속제지퍼로서 세탁과정에서 변형되었으며, 지퍼를 열고 닫을 때 마찰로 인해서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미세한 금속 분말이 발생되고, 오랜 기간 사용에 의해 지퍼가 마모되곤 하였다. 그러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라는 아세탈 수지, 폴리부틸렌 프탈레이트 같은 것이 사용되면서 지퍼는 이러한 단점을 없앨 수 있게 되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금속제를 대체하는 신소재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자동차 기계장치에도 사용된다. 실제로 자동차에는 플라스틱이 상당히 많은 곳에서 사용된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용은 과거에 힘들게 주물해서 성형하는 공정을 대체하였다. 또한 금속용 재료에서의 문제점인 녹이 스는 것, 마찰 마모에 의한 소음, 가공 시 폐수 발생 등이 방지 내지 감소되고 경량화됨으로써 우리의 환경은 오히려 덜 오염되었다.

 

석유는 자연환경을 보호한다?
 
매일 매일 대하는 식탁에서도 석유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석유(화학비료)로 재배한 채소, 석유연료로 요리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에서 주위를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석유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매일 접속하는 인터넷의 PC제품, 즐겨보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 가구, 자동차, 스포츠용품, 완구, 주방용품, 사무용품, 합성세제, 화장품, 의약품, 인공장기 등 너무도 많다.

 

오늘날 우리는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병원을 찾고 약을 먹는다. 이제는 남성들도 화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는 일들이 불과 한세기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고 한다면 쉽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1897년 최초로 합성의약품인 아스피린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는 자연에서 어렵게 얻어지는 천연의약품에 의해 병을 치료해야 했다. 화장품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서서 획기적으로 발전한 석유화학 산업은 누구나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열이 난다고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있는 생물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만약에 윤활유라는 것을 석유로부터 얻지 못했다면, 자동차의 엔진 마찰 등을 해소시키지 못해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동차를 이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재료를 통해서도 물론 가능하기는 할 것이기는 하지만 대규모의 소비량에 과연 수요를 충족시키는 생산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의 산이 울창한 숲으로 변하게 되고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자연 생태계로부터 얻을 수밖에 없는 물질을 인공합성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한 석유의 무한한 변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들어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세라믹등 신소재의 개발이 속속 이루어지자플라스틱 시대는 끝난다라는 성급한 예견이 나오기도 했다. 가공이 쉽고, 가벼우며, 값이 싼 장점이 있지만 불에 타기 쉽고, 분해가 잘 안 되어 환경오염을 유발하며, 강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더 부각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러한 예견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기능성 고분자로 표현되는 각종 플라스틱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플라스틱의 쓰임이 더욱 광범위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전도성 플라스틱’, 이것은 이미 플라스틱 배터리와 플라스틱 콘덴서 등으로 응용되고 있다. 또한 뒤퐁이 개발한케블러 섬유그리고 국내에서 개발된아라미드 섬유처럼 철사보다도 훨씬 인장강도가 뛰어난 플라스틱 섬유도 등장하고 있다. 이 밖에 박막 형태로 만들어 표면을 종이처럼 가공한플라스틱 종이’, 목재의 비중인 0.7~0.9에 맞춘발포수지’, 또한 생분해·광분해성 성분을 섞지 않아도 일정 조건이 부여되면 분해되는차세대 플라스틱도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석유화학이 만든 플라스틱과 화학섬유가 오히려 지구상의 동식물 등 자연생태계를 보존시키는 일등공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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