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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9인의사연구제단

사상9인의사연구제단비

사상9인의사연구제단비

 

사상9인의사연구제단비는 임란 때 우리 지역의 장정들이 관병이나 의병으로 참전한 뒤 살아 돌아 온 9분들이 9인계를 만들어 전쟁으로 황폐화딘 마을의 복구 작업은 주민들의 물론 불편함을 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사상역앞 있었던 회산에 제단을 만들어 동래성이 함락되었던 날인 음력 4월14일 돌아가신 분을 위한 추모제를 지냈다. 생환 해 온 9분이 차례로 돌아가자 자연스럽게 9분을 모시는 제를 올리게 되어 현재까지 400여년간 이어 오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뿌리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700리 낙동강류도 높은산 푸른 골짜기 이름없는 한방울의 샘물에서부터 비롯된다.

 (중략)

 오늘 이곳 낙동강 푸른물 바라보는 백양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사상 사람들의 연구제단을 다시 단장하고 새로 일으켜 세운 사상9인의추모비를 우러러 큰 절을 올리게됨은 이렇듯 대견스러운데 옛조상님들의 크나 큰 미덕을 천만년 한결같이 받들어 나가고자 함이니 님 향한 우리 모두의 간절한 추모의 정을 하나로 모아 삼가 여기 돌에 세계두고자 한다."

 

1988년 4월18일 

사상9인의사연구제단보존회

글쓴이 최현태

 

 

 

1988년4월18일(양력) 이후의 연구제단비 

높이 2,500cm, 기단 가로 50 cm, 너비 60cm

 

맨 아래의 연구제단비는 1987년까지 사용해 오던 비석으로 1988년 연구제단을 정비하면서 현재의 비석으로 변하게된다.

 

 

1970년대 초에 사상공단 조성단계에서 저지재 복토용으로 사라진 회산

이 회산의 오른쪽 사상팔경대 바위 부근에 연구제단이 위치하고 있었다.

 

사상팔경을 기록해 놓은 팔경대 자연석

 

1987년7월경의 연구제단비의 모습

 

사상9인의사연구제단은 해마다 년초 사상구청의 시무식 후 사상구청장은 이곳을 참배하고 있어 사상지역의 정신적인 표상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