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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5~6세기의 양직공도(梁職貢圖)

 

5~6세기의 양직공도(梁職貢圖)

박병역 기자  2013.07.18 17: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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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직공도(梁職貢圖) 중 우리나라의 삼국인 신라ㆍ고구려ㆍ백제의 사신도.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이다. 이 중 백제 사신도 옆에는 백제의 역사와 풍속을 간략히 기록한 제기(題記)가 있지만, 신라와 고구려는 없어진 것으로 간주됐다가 최근 발견됐다. 2011.8.23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당염립본왕회도’ 중 고구려·백제·신라·왜국 사신도(왼쪽부터). 한국목간학회 제공

 

 백제사신

 

왜국(倭國),

 

 페르시아 사신

 

 

중국 수도 베이징 중국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양직공도’ ‘북송대 모본’의 일부분. 절반가량이 소실돼 없어진 ‘북송대 모본’에는 ‘백제국사도’(오른쪽)를 비롯, 12개국 사신도와 13개국 제기가 전한다. 한국목간학회 제공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남당고덕겸모양원제번객입조도’ 중 고구려·백제·신라·왜국 사신도(왼쪽부터). 한국목간학회 제공

 

중국 남조 양(梁·502∼557)나라에 조공한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양직공도(梁職貢圖)’가 5∼6세기 동아시아, 나아가 동유라시아의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도시
공사에서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윤용구 박사는 한국목간학회(회장 주보돈 경북대 교수)가 최근 발간한 ‘목간과 문자’ 제9호에 ‘양직공도의 유전(流傳)과 모본(摹本·모사본)’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원본은 전하지 않는 ‘양직공도’의 모사본 4종을 소개하고 연구사와 자료의 성립 과정 및 사료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검토돼야 할 문제들을 지적한 글에는 그림이 남아 있는 모사본 3종의 도판과 지난 2011년 새로 발굴된 제기(題記) 원문이 영인돼 실려 있다. 제기는 ‘양직공도’의 사신도 옆에 해당 국가의 국명과 지리풍속, 역사, 양나라와의 교섭관계 등을 기록한 글이다.

◆‘양직공도’ 모사본의 종류와 현황 =‘양직공도’는 훗날 양나라 원제(元帝)가 되는 소역(蕭繹·508∼554)이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재임(526∼539)할 때 조공 온 주변 제국 사신의 용모를 자필로 묘사한 두루마리 그림이다. 양 무제(武帝·재위 503∼548)의 일곱 번째 아들이자 회화로도
이름이 높았던 그가 늦어도 539년에는 완성했을 ‘양직공도’ 실물은 소실된 것으로 전한다.

1960년 중국의 미술사가 진웨이눠(金維諾)에 의해 소개된 난징(南京)박물원 소장 ‘북송대 모본’(현재 베이징 중국역사박물관 소장)과 1987년 대만 고궁박물원에서 확인된 ‘남당고덕겸모양원제번객입조도(南唐顧德謙摹梁元帝番客入朝圖·531.5×26.8㎝)’와 ‘당염립본왕회도(唐閻立本王會圖·238.1×28.1㎝)’ 등 3종의 모사본이 20세기 후반 학계에 소개됐다.

1077년 비단에 채색으로 모사한 ‘북송대 모본’은 18세기 초만 해도 25개국의 사신도와 제기가 있었다고 확인되지만, 절반이 소실돼 없어지고 현재 12개국 사신도와 13개국 제기만 전한다. 현존 길이는 가로 198㎝, 세로 25㎝다. 국내에서 일반인들은 ‘양직공도’ 하면 ‘백제국사도(百濟國使圖)’가 전하는 ‘북송대 모본’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양직공도’ 모사본 2종은 모두 제기가 없고 사신의 그림만 있다. 현존 모사본 중 10세기에 모사돼 시기가 가장 앞서는 ‘남당고덕겸모양원제번객입조도’에는 33개국(혹은 32개국) 사신도가, 모사 시기를 알 수 없는 ‘당염립본왕회도’에는 24개국 사신도가 각각 그려져 있다. ‘남당고덕겸모양원제번객입조도’는 종이에 먹으로 그린 백묘화(白描畵)인 데 비해, ‘당염립본왕회도’는 비단에 채색한 것이다. 두 종의 모사본에서는 ‘북송대 모본’에 없는 고구려와 신라의 사신 모습도 확인된다.

◆‘양직공도’ 연구의
전기가 된 새 모사본 제기의 발견 = 이런 가운데 2011년 자오찬펑(趙燦鵬) 홍콩 링난(嶺南)대 교수가 청말 갈사동(1867∼1935)의 문집에 재록된 ‘청장경제번직공도(淸張庚諸番職貢圖)’(이하 ‘장경 모본’) 제기를 공개해 ‘양직공도’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장경 모본’은 청나라 중기 인물인 장경(張庚·1685∼1760)이 1739년 연대 미상의 ‘양직공도’ 백묘화를 모사한 것으로 원래 18개국 사신도 및 제기가 있었지만, 현재 사신도까지 그려진 ‘장경 모본’의 행방은 알지 못한다. ‘장경 모본’ 제기에는 갈반타(渴盤他)·고창국(高昌國)·고구려·신라 등 ‘북송대 모본’에 없는 7개국이 새롭게 등장하며 ‘북송대 모본’에는 일부만 남아 있는 활국(滑國)과 왜국(倭國), 탕창국(宕昌國) 제기의 원 모습도 확인되고 있다. 윤 박사는 “모사 시기가 가장 늦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경 모본’ 제기의 발견이 역설적으로 ‘양서(梁書) 제이전(諸夷傳)’의 사료적 가치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사실 제기뿐만 아니라 모사본에 그려진 사신의
숫자나 기재 순서가 모두 다르며 심지어 모사본 3종에 그려진 같은 나라 사신의 모습이 판이한 경우도 많다. 윤 박사에 따르면, 현존 ‘양직공도’ 모사본 4종 외에 당송 이래 이를 소장하거나 실견한 기록까지 참조하면 사신의 숫자나 기재 순서가 다른 모사본의 수가 10여 종에 달한다. 이는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양직공도’ 모사본이 다양한 종류와 형태로 제작됐음을 말해 준다. 또 현존 모사본 가운데 어느 것이 사료적으로 우월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게 윤 박사의 설명이다.

◆한·중·일의 ‘양직공도’ 연구 동향과 전망 = 2011년 ‘장경 모본’의 제기가 새로 발견되면서 한·중·일 등 동아시아에서 ‘양직공도’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2012년 1월에는 도쿄(東京) 고쿠가쿠인(國學院)대에서 ‘양직공도와 왜 - 5·6세기의 동유라시아 세계’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으며 그 성과가 오는 6월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가령 중국은 상대적으로 ‘장경 모본’ 제기에 나오는 에프탈리트를 칭하는 활국 등 서역 관련 기록에 관심이 많다. 윤 박사는 “중국 역사학계는 ‘양직공도’에서 서역 관련 기록을 1차 자료로 중시한다”고 전했다. 양쯔(揚子)강 유역에 위치한 후베이(湖北)성 남부 징저우(荊州)의 위치로 볼 때 소역이 서역 사신들을 실제로 보고 그리거나 기록으로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일본(日本)’이란 국호의 성립 과정과 고대 동아시아 책봉체제 속에서 동아시아, 나아가 동유라시아의 공간적 범주를 ‘양직공도’를 통해 재구성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윤 박사는 “일본 학계는 서역 국가들이 양나라를 묘사하면서 쓴 ‘해가 뜨는 곳(일출처·日出處)’이란 개념이 동쪽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일본이란 국호가 형성됐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고 말했다. 한국 학계에서도 삼국에 대한 제기가 모두 확인되면서 ‘양직공도’가 보여주는 삼국의 이미지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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