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와 차 한잔]
김은영 문화부장이 만난 부산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
2009-05-02 [08:35:00] | 수정시간: 2009-05-04 [13:31:33] | 12면
오늘은 불기2553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세상을 환하게 밝힌 연등 불빛처럼 자비광명이 온누리에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데스크와 차 한잔'을 나눈분은 무명(無明)과 무지(無知)의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지혜의 등불을 밝히고, 자비심의 실천을 위해 사회복지 활동에도 열심인 스님 한 분입니다. 그 분은 부산 사하구 당리동 승학산 자락에 위치한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 주지이면서 송광사 율주(보통 총림을 두고 있는 큰 절에 설치되는 율원의 최고 책임자)도 겸하고 있는 지현(知玄·56) 스님입니다. 지현 스님이 들려주는 행복론을 비롯, 생명의 존엄성, 지도자 덕목, 고통을 극복하는 법, 한국불교의 미래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역대 대통령 줄줄이 소환되는 모습 안타까워
인문학 외면이 어리석은 지도자 양성 초래
'김 부장,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뜻밖에도 지현 스님은 '행불행(幸不幸)' 질문부터 던졌다. 미리 준비해 간 질문은 꺼내지도 못했다. "행복을 원하는데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을 원하지 않는 데도 우리가 불행해야 되는 건 왜 그럴까요?"
머뭇거리는 사이 스님은 즉답을 이어갔다.
"부처님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하셨죠. 첫째는 욕심, 탐욕이라고 하고, 두 번째는 분노, 세 번째는 무지, 어리석음이라고 하죠. 그런데 어리석은 마음이 긍정적인 환경에선 욕심으로 나타나지만 부정적인 환경일 때는 분노로 나타납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욕심이 생기잖아요. 반대로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화가 나겠죠."
"같은 상황을 두고도 달리 이해될 수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스님은 들은 척 만 척 했다.
"그래서 그 작용이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좋다고 나쁘다고 분별하는, 너다 나다로 구별하는, 모든 것을 이원론으로 나눠놓고 보는, 이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거죠. 우리의 모습은 결국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이 만들어낸 것인데, 우리가 그 사실을 안다면 내 얼굴에 대해서, 내 모습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죠."
그렇다면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일까? 스님은 차 한잔을 마셔도 마음을 집중하면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마시는 것일 수 있고, 구름을 마시는 것도 되고, 농부와 농부의 가족을 마시는 것도 된다고 했다. 그때 비로소 차는 그냥 차가 아니라 우주 전체의 기운이 되며, 차를 마심으로 인해서 우주를 마시는 것이고, 우주와 내가 하나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혈통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뛰었다.
"우리 몸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혈통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족보라는 말도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가 우리 몸을 통해서 돌고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 피가 돌았겠죠. 그렇게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없는 시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내 몸까지 그 피가 흘러왔을 거잖아요. 그러면 단순히 내 몸은 내 몸일까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니, 이번에도 대답 대신 질문의 연속이다.
"결혼하셨죠? 자식이 있죠? 자식이 아프면, 불행하면 부모가 행복합니까, 불행합니까?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거예요. 오늘 내가 행복한 것, 이것은 오늘 내가 자식에게도 행복함을 심어주는 거에요."
의문이 들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불행을 물려주고 싶어할까.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있나요? 바로 자신에게 있어요. 행복해야 된다는 생각은 있지만 행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방법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부처님은 분명하게 아셨고, 체험으로 깨달으셨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면 불행은 줄어들고 행복은 늘어나게 되겠죠. 알아야 해요."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승불교에서 앎이라는 것은 바로 자신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이라고 했다. 모든 생명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말이다. 율주라는 직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대사회에 있어 계율의 의미도 궁금했다.
"계율을 공부하는 것,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나도 부처님처럼 살아야 되겠다, 더러운 것은 피하고 무서운 것은 피하고 그렇게 살자는 것 아니겠어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에요. 지혜로우면 절대 나쁜 짓 할 수 없어요. 자비심도 마찬가지에요. 엄마는 이미 아이의 마음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어루고 달래면서 키우잖아요. 부처님이 우리를 보는 것도 똑같은 거에요. 나쁜 일을 많이 했다고 인간의 존엄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나쁜 짓을 많이 한 인간도 존엄한 존재라고?' 의아해 하는 모습에 스님은 강호순을 예로 든다. 강호순의 부모 마음이 되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강호순이 죽인 사람들의 부모는 어떤가. 생명의 존엄성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생명있는 것은 모두 귀한 법이라고 스님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래도 그로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시 대통령을 거론했다.
"위대한 미국 정신을 대표하는 미국의 대통령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했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나요? 그러면 미국 부시 대통령과 강호순을 저울에 달면 누가 더 죄가 많을까요?"
허를 찔렀다.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강호순을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스님의 대답은 이번에도 한결같았다.
"강호순, 유영철, 신창원 그 사람들만 나쁜 사람이 아니죠. 백주 대낮에 큰 소리 치면서 '난 훌륭한 사람이야' 라고 하는 더 나쁜 사람도 있잖아요. 내가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광주사태를 일으킨 전 아무개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요?"
말이 난 김에 물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안 드느냐고.
"결국은 어리석기 때문이지요. 우린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돈이 많이 있으면,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이 모든 것을 앞서서 시도했어야 하는 것이 인문학인데…. 인문학을 하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고 다들 안 하잖아요. 돈 잘 버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성공을 빨리 하는 비결이라는 사고방식이 온국민들에게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지도자를 양성해 왔던 거죠."
도심에서 사찰을 운영한 지 20년째인 스님. 인터뷰를 하던 지난달 27일도 비는 오고 저녁공양 때는 지났는 데도 문상을 가야한다며 바깥 걸음을 했다. "내가 시내에 내려온 것은 진흙이 되겠다는 그런 발원 때문이죠. 나라는 사람과 인연이 된 사람은 모두 연꽃이 되어서 싱그럽게 피어날 수 있기를 발원한다는 의미 말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게 있잖아요. 겨울의 추위도, 여름의 더위도, 몸이 아픈 것도, 남들이 내 뜻대로 안해주는 것도.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뭘까요? 바로 '진흙'이겠죠. 그런데 순간순간 정신이, 의식이 깨어있다면 덜 고통받겠죠. 진흙이 없다면 연꽃이 필 수 없잖아요. 우리는 고통을 소중하게 여겨야 돼요."
스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스승을 만났다고 했다. "꽃에서 일하는 벌들이 그 아름다운 빛깔이나 향기는 그대로 두고 단꿀만 따 모으잖아요. 그와 같이 모든 만남 속에서 일벌처럼 나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그런 말씀들을 따라배우면 내가 남에게 시기하거나 그런 일은 없게 되죠."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할까. "정신차린 사람에게는 희망적이고요,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비관적이에요. 비단 불교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고 한국이라는 나라도, 가정도, 사회도 마찬가지에요. 정신차리고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그 나라는 부강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5만,10만불 시대가 된들 행복하다고 할 수 없죠. 집집마다 절이 다 된다고 하더라도 불교 발전을 기약할 순 없어요. 깨달으려는 마음을 낸다면 계율이나 경전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어있으니까요."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인데 싶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렸다. "부처님이 어느 날, 어느 때만 오실까요? 어느 법회만 오실까요? 지금보다 더 좋은 시절은 없어요. 어제를 살 수 있습니까? 5분 전이나 5분 후는 요? 과거와 미래는 살 수 없고 현재만 살 수 있어요. 그런데 현재는 너무 짧아서 금세 사라지죠. 때는 바로 지금, 장소는 여기. 부처님의 현주소, 하나님의 현주소라고 해도 괜찮을 겁니다. 현 주소가 어디죠? 지금 여기!" key66@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을 은사로 1972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77년 쌍계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해인사 승가대학과 해인율원을 졸업했다. 이후 송광사 재무국장과 해인사 도서관장 및 승가대학 학감을 거쳐 1989년부터 부산 관음사 주지로 있다. 현재 송광사 율주, 조계종 고시위원, 조계종 교재 편찬위원장, 행자 교육원 교수사,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 대표이사, 두송자활후견기관 관장, 재단법인 관음선행장학회 대표이사, 사단법인 동련 대표이사 등을 함께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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