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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토박이

감전동 愛鄕歌

감전동 愛鄕歌

 

                                             감전동노인회관 옆 화단에 세워진 愛鄕歌碑

 

愛鄕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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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줄기줄기 먼동이 튼다.

거칠은 비바람을 뚫고 헤치며

굳세다 푸른 희망 플라타나스

새들이 재잘재잘 인사를 하네

(후렴)

내 고향 감전동을 사랑합시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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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갈밭치고 아낙네들은

채첩국 팔러가는 아! 내 고향

가난한 사람들을 어찌 잊으리,

허허 벌판 모래땅에 꽃을 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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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칠백리에 새 봄이 오고,

눈물의 그 세월이 흘러 가거든

서로 서로 옛말하며 웃고 지내리,

노래하자 우리 낙토 아! 감전동

 

一九六二월 낙동강변에서

지은이 凡平 崔炫泰

 

 

 

                                                                  애향가 비 뒷면

 

감전동 한울회에서 1993년 5월에 최현태 선생의 애향가 비석을 세우면서  그 내력을 기록하여 놓았다. 이 때부터 감전동 애향가에 곡을 부쳐 동 행사때 불렀다고 한다. 작곡은 당시 사상초등학교 음악 선생이였던 김성철 선생이 담당하였다. 

 

낙동강 하구의 한 작은 동네에서 불려진 애향가! 모진 세월을 살아 온 감전동 사람들의 애환이 소롯히 담겨있기에 더욱 정감이 가는 노래다.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래 간직하려는 마음이리라.

 

 

1993년 5월 애향가비 제막식 광경

 

감전동(甘田洞)은 오랜 옛날 낙동강 하류의 하구(河口)였던 사상지역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 왔던 지역으로서 토사가 퇴적(堆積)하여 생긴 모래톱 섬이었는데 강에서 북쪽은 <유도(柳島)>였고 남쪽으로 <장인도>가 있었으며 안쪽으로 <감도(甘島)>가 위치하였던 곳이다. 섬이었던 감도는 조선시대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여름철이 되면 논밭이 홍수의 피해를 입었던 곳으로 농사를 짓기는 했으나 대부분 저습지와 갈밭지대였다. 또한 강변 모래펄에는 재첩이 많이 잡혔다.

 

 이런 척박한 땅에한사람, 두사람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삶의 터전을 이뤘다. 남정네들은 갈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아낙네들은모래펄에 무수히 많았던 재첩을 잡아 팔았다. 척박한 땅 처럼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고달픈 삶의 연속이였을 테다. 그래서 더욱 정이 들었을 것이고 그 애틋한 심정을 읊은 것이 바로 애향가이다.

 

애향가를 지은 범평(凡平)최현태(崔炫泰 : 1924~2007)는 감전출신으로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부산일보 편집부 차장, 대중신문 편집부장, 민주신보 6.25종군기자, 취재부장을 역임하였다. 이외 사회단체 수필부락 부회장과 회지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사상역뒷편 백양대로 절개지 위에 세워져있는 사상9인의사연구제단의

비문(1987)을 지었으며 저서(공저)로 <<체험농약>>이 있다.

 

 

애향가에 곡을 붙인 김성철 선생의 모습

(사상초등학교 41회 졸업기념사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