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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 머리말

 

꽃은 신이 만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인류의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름이 없다. 그런데 꽃에 따른 문화는 민족이나 자연환경에 따라 저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 지형으로서 온대에서 아한대까지 다양한 기후대가 분포하고 있다. 게다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여름철에 비가 많아 비교적 식물이 풍부한 편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일년 내내 철따라 아름다운 꽃과 더불어 살아올 수 있었다.

어느 민족 못지 않게 꽃을 사랑해온 우리 한민족은 다양하고 풍부한 꽃문화를 형성하면서 이를 유현한 정신문화의 자양분으로 삼아왔다.

최근 들어 우리 국민들의 꽃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에 따라 이 분야에 대한 책도 적잖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대개 식물의 생태를 설명하거나 서구에서 전래된 꽃의 전설이나 꽃말 등을 소개하거나 꽃과 관련된 민속을 일부 개관하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꽃을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체계적으로 다룬 책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원래 식물학·원예학·문학·민속학·미술사학·화훼 등 꽃문화와 관련된 분야에는 문외한이었고 생업도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이 분야에 심취하여 오랫동안 정열을 쏟아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어린시절을 깊은 산골마을에서 보냈다. 산야에 지천으로 널린 수풀을 벗삼아 마음껏 뛰놀면서 어쩌면 그때 식물 생태학의 기초를 배웠는지 모른다. 그후 성인이 되어 오랜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산림을 관리하고 도시를 건설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아름다운 국토환경을 위해 어떤 초목을 어떻게 심어 가꾸어야 하는가 하는 과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무와 꽃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우리 꽃문화에 관하여 조금씩 연구를 쌓아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조상들은 무슨 꽃을 좋아했고 일상 생활에 어떻게 이용하여 왔으며, 또 꽃에 있어 어떤 미의식과 자연관을 형성해 왔는지를 밝히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우리 꽃문화에 대한 선학(先學)의 연구 자료가 너무 빈약하여 숱한 애로를 겪었다. 또한 서양의 꽃말에 관해서는 줄줄이 꿰는 젊은이들이 우리 조상들이 사랑했던 우리의 꽃에 관해서는 그 초보적인 상징 의미조차 전혀 모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꽃을 좀 안다는 지식인들조차 우리의 꽃문화에 관련된 내용을 잘못 알고 있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조선왕실의 문장화를 오얏꽃(李花)이 아닌 배꽃(梨花)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사십리에 피어 있는 해당화(매괴)의 꽃말을 '잠자는 미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양화소록(養花小錄)》과 《화암수록(花菴隨錄)》의 기술 내용을 혼동하여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 공원이나 주택 정원은 그 양식이나 수종의 선택에 있어 맹목적으로 서구화를 좇은 나머지 우리 조상들이 창안하고 발전시켜온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어쩌면 무모한 만용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숱한 애로를 겪어야 했다.

첫째로 식물학·문학·민속학·회화·장식미술·공예미술·꽃꽂이·조경 등 꽃문화에 관련된 각기 다른 전문 분야가 너무 방대하여 저술에 필요한 지식을 섭렵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둘째로 그 광범위한 분야의 자료나 문헌을 수집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과 정열이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그 자료들은 대부분 고문헌이거나 희귀본이어서, 수십 번이고 다리품을 파는 일은 놔두고라도 열람하는 것 자체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2대 원예전문서의 하나로 알려진 《화암수록》의 전문은, 그 원본(필사유일본)의 소장자인 이겸로(李謙魯) 선생께서 당신의 서재를 손수 5개월간이나 뒤지게 한 수고를 끼쳐드린 끝에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고려 말기의 목판본으로 알려진 《농상집요(農桑輯要)》는 끝내 그 원본(개인 소장)을 열람할 수 없어 지금도 애석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꽃에 관련된 유적지 등의 사진이나 기록 자료를 입수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에 있는 자료를 구하는 데는 더욱 애를 먹었다. 일본 교토 지장원(地藏院)에 있는 오색팔중(五色八重) 동백 사진이나 미야기현(宮城縣) 형무소 구내에 있는 조선매(朝鮮梅)의 꽃핀 모습이 담긴 사진은 현지와 여러 차례에 걸친 연락 끝에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천학비재(淺學菲才)함과 연찬(硏鑽)의 부족으로, 우리 꽃문화를 종합적으로 집약하여 그 역사·문화적 궤적을 그려냄으로써 꽃에 관한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 자연관을 밝히고자 한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연구가 미치지 못한 분야도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류를 범하거나 방치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특히 많은 원예식물의 꽃이름에 관한 유래, 도래 식물일 경우 그 도래 시기나 경위, 시대 배경 등을 깊이있게 다루지 못하고 또 원예기술의 발전과정과 그에 따른 새로운 품종의 개발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분야에서는 선학(先學)의 연구가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관련 문헌도 찾을 길이 막막하였다. 이제 후학들의 연구를 기다릴 따름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꽃에 부여했던 의미나 감정이 세월과 더불어 많이 변화하였다. 특히 원예기술의 발달은 꽃이 지닌 고유의 계절감을 앗아갔으며, 외래종의 범람은 우리 민족의 꽃에 대한 취향마저 바꿔 놓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가치관의 혼돈이 심화되는 과학만능의 시대라고 할지라도 꽃은 여전히 우리 생활 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풍요로운 마음과 아름다운 정신을 지켜주는 상징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또한 면면히 쌓아온 우리 꽃문화의 아름다운 전통과 고결한 정신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라건대, 꽃을 사랑하고 우리 문화를 아끼는 분들이, 특히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이 우리 꽃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조그마한 밑거름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기쁨과 보람은 없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는 데 도와 주신 지인(知人) 여러분과 자료 사용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선생님들께 이 책의 빛(榮)을 돌리는 바이며, 이번에 새로 개정본을 만들어주신 (주)도서출판 넥서스 사장님과 편집진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 머리말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3.10, 넥서스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