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 고래그림이 있다” 1970년 겨울, 동국대 불교사적 조사팀은 마을의 한 아이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발굴된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는 유난히 고래그림이 많은데요, 우리가 이 고래그림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당시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 먼 옛날에는 고래를 어떻게 잡았을지 3천년 전 시간 속으로 고래를 잡으러 떠나보겠습니다!
반구대암각화에 그려진 바다동물은 모두 64점, 그 중 고래그림은 58점이다. 그림 속 고래들을 보면 특징이 정확한데, 새끼 고래를 업고 있는 귀신고래, 머리가 사각형인 향고래, 아래턱에서 배꼽 뒤쪽까지 주름이 많은 혹등고래, 종류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하다. 이렇게 고래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당시 사람들이 고래를 잡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특히 해체한 고래그림은 투시적 표현으로서 오늘날의 고래해체 순서와 같다는 점으로 볼 때 당시 어로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로기술을 보여주는 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먼저 그림 속으로 고래를 잡으러 떠나보자~
배가 떠나기 전, 오늘도 고래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주술사가 신에게 정성 가득한 기원을 올린다. 고래잡이배에 탈 사람들은 모두 18여명. 배의 한 쪽에는 고래를 잡기 위해 갈고 닦은 날카로운 돌작살이 묶여 있다. 드디어 고래 떼가 몰려오자 사람들은 용감하게 고래와 맞서 싸운다. 고래가 지칠 때까지 공격을 거듭하다 결정적인 순간! 고래의 심장부에 정확하게 작살을 꽂는 것이 기술~ 잡은 고래를 끌고 마을로 돌아와 한바탕 잔치라도 벌였을 반구대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고래잡이의 과정을 바다가 보이는 이 바위에 누군가 하나씩 새겨 놓았던 것이다.
자, 이것이 바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고래를 잡는데 썼던 배입니다. 고래를 잡으려면 태화강을 따라 장생포까지 가야했는데 이 배가 필수였겠지요. 숲에서 베어온 나무를 쪼개고 속을 파내서 만든 일명 통나무배는 배를 만드는 기본인데요, 바로 조선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고래와 사슴이 겹쳐서 보이는데요, 바로 사슴은 고래를 잡아야하는 선사인들에게 자연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한 제물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당시의 자연신앙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인 것이죠.
자, 여기에 또 다른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으로 정착 생활이 시작되는 시기 입니다. 반구대 사람들 역시 정착 생활을 했다는 증거로 수렵그림을 암각화에 새겨놓았습니다. 큰 고래도 잡았으니 육지동물도 기대가 되는데요, 자, 이번에는 드넓은 들판으로 같이 떠나보실까요?
3천여 년 전, 어로와 수렵생활을 하며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 과연 그들은 이 드넓은 산과 들에서 무엇을 잡아서 먹으며 살았을까?
반구대 암각화에 가장 많이 표현된 육지동물은 바로 사슴이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이 시대의 사냥법이 무척 계획적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팔을 부는 몰이꾼이 사슴을 요령있게 몰아주면 활을 든 사냥꾼이 때를 놓치지 않고 활을 쏜다. 사냥꾼 앞에는 사슴이 여러 마리가 있는데 집단적으로 사슴사냥을 했던 것일까.
멧돼지와 같은 동물은 직접 만든 칼을 들고 용감하게 싸워서 잡기도 했고 돼지나 사슴 같은 동물들을 울타리 안에 미끼로 넣어 호랑이 같은 힘센 동물들을 유인하기도 했는데 울타리 안에 돼지와 사슴이 있는 그림은 당시에 이미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고 호랑이 같은 맹수로부터 보호하려고 했음을 말해주는데 이것은 어로기술만큼 당시의 사냥기술도 점차 발달되는 단계였음을 말해준다.
반구대 암각화는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그려진 그림은 아니라고 합니다. 지각변화가 일어나고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동안 조금씩 그려진 선사미술의 대표 작품인 것이죠. 소박한 이 그림들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이 그림 속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들이 꾸었던 꿈도 함께 담겨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 꿈은 이곳에 살며 그림을 그렸을 먼 옛날 사람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3천여 년 전이라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지난 8월 30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암각화 현장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를 위한 개토제를 앞두고 취재진들이 암각화를 촬영하고 있다. 올 여름 가뭄으로 암각화 앞 대곡천이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2013.8.30
48년만에 수몰을 면한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암각화 전면에 가변형 투명 물막이 공사가 내년으로 예고된 가운데 문화재 지표조사가 한창이다. 왼쪽 평평하게 선 바위가 반구대 암각화. 최근 비가 내리자 암각화 쪽으로 물이 가지 않도록 제방을 다시 쌓아 유로를 바꾸고 있다.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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