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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

제주의 풀꽃나무이야기-제비꽃

제주의 풀꽃나무이야기-제비꽃

2013-04-23 13:18 | 류도성 아나운서

 

 

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제비꽃'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


사전적 의미로 오랑캐는 북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 약간의 '멸시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유목민족이다 보니까 늘 물자와 식량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고 비교적 식량이 풍족했던 중국의 남쪽 지역이나 한반도를 침략하여 약탈해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중국 사람들은 동쪽의 이(夷), 서쪽의 융(戎), 남쪽의 만(蠻). 북쪽의 적(狄) 등 '오랑캐'라는 뜻의 글자를 사용하여 주변에 사는 모든 민족에게 오랑캐 딱지를 붙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식량이 떨어지는 시기인 봄이 되면 북쪽에서 국경을 넘곤 했는데 그들을 오랑캐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쳐들어 올 즈음 피는 꽃이 제비꽃입니다. 그래서 제비꽃을 오랑캐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제비꽃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숲으로 나가 보면 제비꽃 세상입니다. 짙은 보라색 꽃잎을 하고 있는 제비꽃을 비롯해서 고깔모양의 잎을 가진 고깔제비꽃, 털이 많은 털제비꽃, 연보랏빛 꽃이 고운 낚시제비꽃, 잎이 많이 갈라지고 흰 꽃을 가진 남산제비꽃 등 많은 제비꽃들이 올라오고 있고 색깔이나 모습도 천차만별입니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대략 60여종의 제비꽃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비꽃은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 풀꽃으로 키는 커봤자 10cm 내외입니다. 물론 꽃이 지고 나면 그 보다 훨씬 크게 자라나서 20cm 정도 되는 졸방제비꽃이나 긴잎제비꽃도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이르면 3월에 왜제비꽃을 시작으로 줄을 이어 가을까지 꽃을 피웁니다. 꽃의 색깔은 보라색이 많지만 핑크빛을 띠는 것도 있고 노랑색, 흰색을 띠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뿌리에서 올라온 잎 사이에 꽃대가 나와 그 끝에 꽃이 달리지만 졸방제비꽃이나 낚시제비꽃처럼 부리에서 줄기가 올라오고 그 줄기에서 꽃대가 나와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제비꽃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을에도 꽃잎을 열고 있는 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꽃잎을 열지 않은 꽃까지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제비꽃은 특이한 생태를 가졌습니다. 봄에 피는 제비꽃은 꽃잎을 활짝 열어 매개 곤충을 불러들이고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후손을 이어가는 것이 불안했던지 가을에도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가을에는 꽃가루받이를 돕는 곤충의 활동이 뜸한 시기이기 때문에 제비꽃은 꽃잎을 열지 않는 폐쇄화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자기 꽃가루받이를 하기도 합니다. 건강한 씨앗을 만들기 위해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하는 사태를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실을 하면 씨앗을 멀리 퍼뜨려야 합니다. 그런데 제비꽃은 키도 작고 씨앗도 크지 않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비꽃은 기발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먼저 조금이라도 씨앗을 멀리 보내기 위한 꼬투리열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열매가 다 익으면 꼬투리가 말리면서 터져 씨앗을 튕겨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더 멀리 퍼뜨리는 것은 개미가 도와줍니다. 제비꽃은 씨앗에 개미가 좋아하는 '엘라이오좀(elaiosome)'이라는 단맛이 나는 물질을 만듭니다. 개미가 씨앗을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운반하고 그 물질을 먹은 후에는 집 밖으로 버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제비꽃의 씨앗은 여러 곳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작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지붕 위에나 큰 나무까지도 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귀했던 시절 제비꽃 꽃대로 꽃씨름을 하기도 했고 꽃반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순을 따고 와서 나물로 무쳐서 밥상에 올리기도 했고 꽃으로는 화전을 부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방에서는 유방염 같은 부인병이나 이질, 설사에 약재로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제비꽃은 쓰임이 많았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 되다 보니까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올 즈음 꽃이 핀다 하여 '제비꽃'이라 불렀고 꽃이 필 때 오랑캐들이 쳐들어온다 하여 '오랑캐꽃', 꽃 모양이 씨름하는 자세라고 해서 '씨름꽃', 병아리를 닮았다 하여 '병아리꽃', 아이들이 반지를 만들어 끼는 꽃이라 해서 '반지꽃', 집 주변에서 많이 핀다고 해서 '문패꽃'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제비꽃이 그리스의 아테네를 상징하는 꽃이었으며 장미처럼 가장 널리 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세에 와서도 제비꽃은 장미, 백합과 함께 성모께 바치는 꽃이었습니다. 이것은 장미는 아름다움을, 백합은 위엄을, 제비꽃은 성실과 겸손을 나타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했는지 모르지만 제비꽃의 꽃말은 겸양입니다. 키가 작은 제비꽃을 보기 위해서는 몸을 낮춰야만 제대로 볼 수 있으니 꽃말이 제격입니다. 4월 중순이 됐지만 변덕스런 날이 많아 봄인지 헷갈리게 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자세를 낮추면 제비꽃을 포함한 많은 들꽃에게서 봄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봄의 절정에 와 있음은 확실한 듯합니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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