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공간 정보에 대한 다양한 표현 방법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훌륭한 지도는 거리와 방향의 위치 정보가 가장 정확한 지도라는 생각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 지도의 역사는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기 위한 역사로 인식되었다.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의 물결이 정확한 지도를 도구로 삼아 전통문명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생겨난 강박관념이다. 하지만 2012년 자신의 옆에서 사용되는 지도의 종류를 살펴보면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거리와 방향의 위치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그림 같은 지도를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지하철과 버스 안, 그리고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마다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표식 지도가 꽉 메우고 있다. 지도의 역사를 정확한 지도 제작의 역사로만 생각했던 근대적 강박관념 속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가 지도를 통해 필요로 하는 공간 정보로 정확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에서 가장 유행한 지도책
우리는 화려하거나 거대한 지도를 보고 감탄하면서 그것이 전통적인 지도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화려하거나 거대한 것은 베껴서 이용하는데 상당히 불편하다. 목판으로 새겨서 찍어내는데도 어렵다. 아주 간단하지만 자주 잊게되는 사실이다.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 지도는 원형천하도(세계지도)-중국지도-일본지도-유구국지도(오키나와 지도)-조선전도와 도별도 8장 등 13장으로 이루어진 소형 지도책이다. 정확한 숫자를 헤아릴 수는 없지만 여러 종류의 목판본을 비롯하여 최소 수백 종 이상 남아 있다.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에서는 상당히 떨어지지만 조선의 지도 이용자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평균적인 공간 정보와 이를 전달하기 위한 체계적인 기호의 사용이 잘 담겨 있는 작품이다.
조선인의 소망이 담긴 공간을 그려낸 그림식 지도
그림식 지도란 산과 산줄기 등 풍수적 이미지를 강조해 그린 지도를 말한다. 객관적 실체로서의 공간은 주관적 소망이 담기면서 사람의 공간으로 바뀐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사람이건 공간에 대한 주관적 소망을 갖고 있고, 그것을 평균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바로 그림식 지도다.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은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그저 강조하고 싶은 정보를 중심으로 소망 공간을 그려내면 된다.
조선시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전국 지리지 편찬이 활발했는데, 1720년대에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서울과 모든 고을의 세세한 정보가 담긴 그림식 지도책이 편찬되었다.
우리는 그림식 지도책에 담긴 옛 지도를 통해 조선후기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소망 공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거기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산과 산줄기를 강조하는 독특한 표현 방법이 담겨 있다.
정상기·정철조·신경준 그리고 김정호
현대 지도 위의 우리나라 모습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정확한 남북 약 2.5m의 대형지도를 제작한 사람은 정상기(鄭尙驥, 1678~1752)다. 뒤이어 정철조(鄭喆祚, 1730~1781)가 크기는 비슷하지만 더 자세한 지도를 두 번에 걸쳐 만들었다. 1770년에는 영조의 명을 받은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모두 이으면 남북 약 6m에 이르는 고을지도-도별도-전도 세 종류의 초대형 지도를 제작하였다.
김정호(金正浩, 추정 : 1804~1866)는 신경준의 지도를 기본도로 하면서 훨씬 이용하기 편리한 『청구도』 2책을 만들었고, 세 번에 걸쳐 개정판 『청구도』를 편찬하였다. 이후 김정호는 이어보기 쉬운 병풍식의 『대동여지도』 제작에 착수하였고, 두 번에 걸쳐 개정판을 만든 후 마지막으로 편찬한 것이 22첩의 목판본 『대동여지도』다. 근대 이전에 만들어졌던 한중일의 대축척 지도책 중 『청구도』보다 찾아보기 쉬운 지도책, 『대동여지도』보다 이어보기 쉬운 지도책은 현재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정확함과 자세함 못지않게 중요한 이용의 편리함
지도 전문 제작자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 정확함과 자세함에만 감탄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하고 자세하더라도 이용에 불편하면 유행하지 않게 되어 지도의 실용적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용의 편리함에 대한 제작자의 고민도 함께 엿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그것은 문화재로서 고지도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 중의 하나다.
글·사진·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전문원 사진·문화재청
출처: 문호재청>월간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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