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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조선(朝鮮)의 `장도(粧刀)`

은장도를 포함한..

조선(朝鮮)의 '장도(粧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절개지킴으로 말하는 은장도는 여러가지 장도(粧刀) 중에 하나이다.

금장도, 은장도, 옥장도, 목장도, 동장도, 죽장도, 철장도, 등으로 성인 한뼘크기 내외의 칼을 말한다.

 

 

 

장도문화(粧刀文化)에 관한 고찰(考察)

 

Ⅰ. 머리말

 
장신구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유산 중에서 수공예문화(手工藝文化)의 정점을 보여주는 물품(物品)이다. 선조들은 선사시대부터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 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출구로 장신구를 제작하여

사용해왔다. 이후 장신구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며 발전을 거듭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조선시대 장신구는 패식용(佩飾用)과 수식용(首飾用)으로 나뉜다. 노리개, 목걸이, 가락지, 팔찌, 장도 등은 패식용으로, 첩지, 비녀, 떨잠, 뒤꽂이 등은 수식용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장도는 조선시대 여인의 3대 소장품인 빗, 거울과 함께 중요한 생활 용구로 이용하였다.

소도(小刀)인 장도는 실용도로 각종 물(物)을 자르거나, 젓가락, 귀이개, 과일꽂이 등의 첨자(添子)를

달아 사용하였다. 이 처럼 장도는 실용적인 기능에서 시작하여 미적 아름다움을 위한 치레용으로

발전하였고, 나중에 여인의 정절을 지키는 절개의 상징으로 이용하였다.

 

본고에서는 장도의 기원과 개념,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장도문화의 단면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장도의 기원과 개념

 
1. 장도의 기원

 
장도는 패도(佩刀)와 낭도(囊刀)의 복합어로 몸을 치장하는 칼이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칼을 사용했으며,

석도(石刀)를 패용하는 풍습은 고대 북방유목민에게서 유래하였다.1)

조선시대의 장도와 같은 개념의 도(刀)는 삼국시대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翰苑 2)』의 「高句麗條」를 보면 "刀를 차고 이로써 等威를 나타내고, 金羽로서 貴賤을 밝혔다.3)"라고

기술하고 있다. 도(刀)는 패도(佩刀)로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신라의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

북분 출토의 금제과대(金製銙帶)에는 곡옥(曲玉), 금판(金版), 소도(小刀), 물고기(魚), 침통(針筒) 등의

요패(腰佩)가 존재하는데 여기서 장도와 흡사한 소도가 등장한다.

 

이후 장도는 고려시대4)를 거치면서 몽골의 영향을 받고 조선시대로 이어져 발전하게 되었다.5) 조선시대

장도의 발달은6) 장도가 권위와 신분을 상징하고 호신용7)으로 사용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와 같은 장도는 장식이 지나쳐 사치품으로 변화한다.『朝鮮王朝實錄』 연산군과 중종代에서는 금제절목

(禁制節目)으로 은장도를 지목하고 서민들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8)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두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장도가 장식용으로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현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수요와 공급이 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고 수공예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사라져 결국

장도는 문경, 울산, 광양 등의 장인들에 의하여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게 되었다.

 


2. 장도의 개념

 
장도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장신구로 실생활용과 장식용 그리고 호신용으로 남녀가 사용하였다.

장도의 종류 중 은저(銀箸)가 달린 첨자도(籤子刀)는 음식의 독을 분별하여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도

하였고, 호박, 침향으로 장도를 제작하여 위급할 때 칼로 깎아 상처에 바름으로써 지혈을 하는 구급약의

역할도 하였다.9)

장도는 남성의 경우 고름, 허리띠, 포의 술띠에 차고 여성의 경우 치마허리에 걸거나 노리개의 주체로

삼아 겉고름, 안고름에 착용하였다.10) 장도의 문양은 착용하는 주체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성은 명문(一片心, 直千金), 누각, 운학, 박쥐, 용 등 장생문(長生紋)을 사용하며, 여성은 매화, 난, 국화 등

여성스러운 문양을 사용한다. 아래에는 장도의 문양에 따른 상징적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장도의 문양에 따른 상징적 의미

 

문양 형태

상징성

비고

용(龍)

권위, 길상,  벽사와 수호

왕실이외에는 금지되었으나 조선후기 일반화되어 사용됨

박쥐(蝙蝠)

행복

박쥐와 수(壽)자를 함께 나타내면 만세수(萬歲壽) 의미

산수(山水)

인간생활 환경의 근본

일월(日月), 누각(樓閣), 교(橋), 지(池)를 혼합하여 나타냄

태극(太極)

음양오행의 원류

인간마음의 구체화된 상징, 동적(動的)인 상태

매화(梅花)

지조와 절개

봄을 알리는 기쁜 소식

대나무(竹)

축수(祝壽)

어려운 환경에서의 꿋꿋한 성품 상징

소나무(松)

장수

대나무, 매화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 학과 해를 같이 하면 상서로움을 상징

국화(菊花)

군자의 기상

속세를 떠나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고고하게 살아가는 은사(隱士)를 비유

난초(蘭草)

자손(子孫)

우정과 고아(高雅)한 품격 상징

연꽃(蓮花)

화중왕(花中王)

연밥은 다손(多孫)과 풍작을 상징

나비(胡蝶)

인간의 탄생, 죽음, 부활

즐거움과 부부화합의 의미

물고기(魚)

다산

등용과 출세를 의미

개구리(蛙)

상서로운 동물

물과 육지의 두 세계를 공존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 역사문화도감』, 2005, 141쪽, 장도의 문양만 발췌 재인용)


Ⅲ. 장도의 특징

 
1. 장도의 재료

 

장도의 재료로는 금, 은, 동, 철, 흑단(黑檀), 향나무, 대추나무(棗木), 서각(犀角), 흑각(黑角), 화각(華角),

소뼈(牛骨), 상아(象牙), 대모(玳瑁), 옥(玉), 호박(琥珀), 비취(翡翠), 산호(珊瑚), 공작석(孔雀石),

금강석(金剛石) 등이 있다.11)

 


1) 금속(金屬) 재료12)

 
(1) 금(金)

 

금은 황금(黃金), 청금(靑金), 호박금(琥珀金) 등 색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운다. 황금은 전연성(展延性)이

우수하며 화학약품에 쉽게 용해되지 않는다. 금은 원소기호 Au, 비중 19.3, 녹는점 1,063℃, 끓는점 2,695℃,

열전도율 0.708 cal/cm· sec· deg이다. 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장도의 장식부분에만 적은 양 사용한다.

 
(2) 은(銀)

 

은은 청백색으로, 녹슬거나 변색이 적고 전성(展性)과 연성(延性)이 좋으며 0.0015㎜까지 두께를 얇게 펼 수

있어 가공이 용이하다. 원소기호 Ag, 녹는점 960.5℃, 끓는점 2,710℃, 비중 10.5이다. 주재료나 부재료로

모두 광범위하게 쓰인다.

 
(3) 동(銅)

 

적동색을 띠며 열전도율이 높고 전연성이 좋은 편이다. 착색과 도금이 용이하며, 황동, 단동, 청동, 백동,

양백 등의 동 합금은 낮은 용융점과 높은 경도,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어 공예품에 많이 이용된다.

백동은 동(銅) 70~80%와 석(錫) 20~30%를 넣은 합금으로 은 대신 장도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Cu-Ni계의 고용체형(固溶體型)으로 광택이 강하고 내식성과 전연성이 풍부하며 가공성이나 열간 단조성(鍛造性)이

좋은 편이다.

 

(4) 철(鐵)

 

철은 유연성과 가소성이 좋은 재료로 원소기호 Fe, 녹는점 1,535℃, 비중 7.86이다. 자연계의 철은 산화철로서 산소, 규소, 망간, 인, 유황, 탄소의 함량에 따라 연철, 선철, 강철, 주철 등으로 구분된다. 장도의 칼날은 강철을 이용하여 제작한다.


 

2) 나무(木) 재료

 

(1) 흑단(黑檀)

 

감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등에서 분포하며, 석회질 토양에서 잘 자란다. 변재(邊材)는 회색이고 검은 줄이 있으며, 내구력이 약해 충해를 받기 쉽다. 심재(心材)는 흑색으로 내구력이 강하다.

 

(2) 향나무

 

향나무는 측백나무과로 목리(木理)가 미려(美麗)하고 향기가 좋으며, 가볍고 가공하기 쉽다. 관리의 홀(笏)과 제기(祭器)뿐 아니라 많은 공예품에 두루 쓰인다.

 

(3) 대추나무(棗木)

 

갈매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하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수호신으로 여겨 장도로 제작할 경우 부적의 역할을 하였다.


 

3) 각(角) 재료

 

(1) 서각(犀角)

 

코뿔소는 물가에 살며 잠수(潛水)가 가능한 초식성 동물로서 강인한 인상과 체력을 지니고 있어 신성스러운 동물로 여겼다. 이와 같은 코뿔소의 뿔(犀角)은 해열제나 해독제로 많이 사용하였고, 양반은 각종 공예품에 이용하였다.

 

(2) 흑각(黑角)

 

빛깔이 검은 물소 뿔은 피를 끌어 모아 뿔이 되기 때문에 칼슘이 아닌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탄력이 있고 청혈해독(淸血解毒)의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 쓰인다.

 

(3) 상아(象牙)

 

상아는 코끼리 위턱에 있는 어금니로서 입 밖으로 뿔처럼 길게 뻗어 나와 있다. 백색, 노란색, 누런색 등의 색상을 보이며 전부 치질(齒質)이다. 갈면 갈수록 광택이 좋아 공예품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4) 대모(玳瑁)

 

대모는 거북이 등껍질로 최장 85㎝, 보통 60㎝이하이다. 심망모양으로 반투명한 누런 바탕에 암갈색

구름문양이 지붕의 기와처럼 서로 포개져 있다. 

 

(5) 소뼈(牛骨)

 

황소의 정강이뼈(脛骨)를 잿물에 푹 고아 기름기를 제거하고 그늘에서 말린 다음 잘 다듬어 매끄럽게

광택을 낸다. 소뼈를 공예품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공시간이 3개월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귀한 재료로

여겼다. 
 

(6) 화각(華角)

 

화각은 따뜻한 물에 불려서 편 소뿔을 크기가 일정한 사각으로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들고 그 위에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등 화려한 석채(石彩)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대모(玳瑁)를 구하기 어려워 만들기

시작하였다.

 

 

4) 기타 재료

 

(1) 옥(玉)

 

옥은 경옥(硬玉)과 연옥(軟玉)으로 나뉜다. 경옥은 휘석이고 연옥은 각섬석류이다. 보통 백색, 무색이지만 철, 크롬, 망간을 섞어 녹색, 황색 등을 띠기도 한다. 표면이 투명하고 광택이 나며 구조가 치밀하여

고대시대부터 각종 도구의 재료와 장신구로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2) 호박(琥珀)

 

지질시대 송진(樹脂)이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수소, 산소, 탄소와 결합하여 돌처럼 굳어진 광물이다.

투명한 금패와 반투명한 밀화로 구분하며 위급한 상황에는 구급약으로 사용한다.

 

(3) 공작석(孔雀石)

 

탄산동, 수산화동으로 된 청록색의 광물이다. 동광(銅鑛)의 변성물로 단사정계의 덩이꼴로 출토되기도

한다. 결정은 진한 녹색이고 덩이꼴은 담녹색이다.

 

(4) 산호(珊瑚)

 

산호는 해조류를 연마한 것으로 총명, 정열, 용맹 등을 상징한다. 광택이 좋지만 흠집이 나기 쉬우므로

조심히 다뤄야 할 품목으로 불교에서 칠보(七寶) 중 하나로 여겼다.


 

2. 장도의 종류

 

장도는 칼집과 칼자루의 재료, 장식, 모양에 따라 명칭과 형태가 분류된다. 여기에서는 형태와 장식에

따라 장도를 구분하여 기술하였다.13)

 

1) 형태에 따른 분류

 

형태에 따라 을자도(乙字刀)와 첨자도(籤子刀), 사각도(四角刀), 팔각도(八角刀) 등으로 분류된다.

을자도는 생김새가 乙자형으로 여인들의 버선코처럼 생긴 장도이고, 첨자도는 도신(刀身)이 붙은 칼자루가

칼집에서 빠지지 않도록 젓가락, 귀이개, 과일꽂이 등을 첨가한 장도이다. 사각도와 팔각도는 도(刀)의

꾸밈새가 사모형(四模形), 팔모형(八模形)의 장도이다.

 

2) 장식에 따른 분류

 

장식에 따라 맞배기도와 갖은도로 나뉜다. 맞배기도는 일자형, 원통형으로 단순하게 장식한 장도로

서민층에서 사용한다. 갖은도는 몸통표면에 새김 장식을 하고 여러 가지 장식을 사용하여 화려하고

복잡하게 꾸민 장도이다.14)


이밖에 노리개의 주체로 사용하는 칼집과 칼자루만 있는 벙어리장도가 있다.

 

 

 

3. 장도의 구성

 

1) 칼자루 ; 도신(刀身)에 연결되어 있으며 칼집에서 칼을 뽑을 때 손에 쥐는 자루이다.

2) 칼 집 ; 장도의 몸체로서 도신을 넣는 부분이며 다양한 제식(製飾)을 부착한다.

3) 왕매기 ; 원장식 끝에 부착하는 가락지 모양의 제식이다.

4) 원장식 ; 칼집에 붙이는 바탕 제식으로 메뚜기, 국화, 환형(環形)고리 등을 부착한다.

5) 메뚜기16) ;고리를 끼울 수 있도록 원장식에 붙이는 제식이다.

6) 고 리 ; 다회를 연결한다.

7) 사발이17) ; 칼집을 죄여주거나 옥장도와 같이 미끄러운 장도를 잡기 쉽도록 두르는 띠이다.

8) 주석매기 ; 칼자루와 칼날을 연결하는 부분이다.

9) 칼날 ; 강철로 제작하며 무르거나 너무 단단하지 않도록 한다.

10) 도신(刀身) ; 칼자루 안으로 들어가는 칼의 일부분으로 칼등과 칼날을 통칭한다.

11) 하맥이 ; 앞매기와 뒷매기를 합쳐 하맥이로 명명하며 칼집과 칼자루 양 끝단에 붙이는 장식이다.

칼날을 고정하는 송진이 칼자루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4. 장도의 제작도구와 제작기법

 

1) 제작도구18)

 

화덕 ; 숯을 넣고 불을 피워 금, 은, 구리, 철 등의 금속을 열풀림하거나 녹일 때 쓴다.

풀무(불무) ; 화덕에 바람을 일으켜 온도를 조절할 때 쓴다.

도간(도가니) ; 장도의 재료인 금속을 녹일 때 쓴다.

활비비 ; 칼집과 칼자루의 구멍을 뚫을 때 쓴다.

거도(鋸刀) ; 폭이 좁고 긴 톱날로 길이가 5 ~ 20 cm이며, 칼집과 칼자루에 칼날이 들어가도록 속을 파낼 때 쓴다.

보래 ; 긴 쇠막대로 장도의 종류에 따라 타원형, 사각형, 팔각형으로 나뉘며 하맥이 등 장식의 모양을

잡을 때 쓴다.

물줄이 ; 줄질, 톱질을 할 때 손으로 잡기 어려운 부속들을 죄여주는 역할을 한다. 메뚜기나 첨자 장식을

조일 때 쓴다.

갈기(깍치) ; 사각의 끝이 뾰족한 송곳으로 땜이 흐른 것을 긁어내거나 장도의 거친 표면을 다듬을 때 쓴다.

다듬목 ; 줄, 갈기, 보래의 받침대이다.

칼대 ; 칼날을 깎을 때 사용한다.

찌구 ; 칼집의 겉을 다듬을 때 사용한다.

쇠망치 ; 큰 망치는 칼몸을 벼리거나 은을 늘일 때 사용하고, 중간 망치는 장식의 모양을 잡을 때 사용하며, 작은 망치는 칼몸에 명문을 새기거나 원장식에 국화를 붙일 때 사용한다.

나무망치 ; 형태와 면을 고를 때 쓴다.

연장칼 ; 부속의 앞뒷면을 표시할 때, 원장식에 국화를 달거나 나무를 자를 때 쓴다.

거름쇠 ; 컴퍼스(Compass) 구실을 하는 것으로 국화를 제작할 때 쓴다.

줄 ; 칼집과 칼자루의 형태와 제식을 다듬을 때 사용하며 큰 줄부터 부드러운 세공 줄까지 30여종의 줄이

있다.

쇠모루 ; 칼몸과 은판을 만들거나 명문을 새기고, 주석매기를 제작할 때 사용한다.

납인두 ; 메뚜기, 하맥이 등의 장식을 납땜할 때 쓴다.

깔때기 ; 장도의 은은한 광택을 내기 위하여 모래를 장도 전면에 흘려줄 때 사용한다.


 

2) 제작기법19)

 

(1) 제식(製飾) 제작

 

제식(製飾)은 은이나 백동을 녹인 후 식혀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려 두께 0.6 ~ 0.8㎜ 정도가 되도록 편다. 은판은 필요한 크기의 원장식만큼 자른 후 불에 실고 줄질을 하여 주위를 깨끗이 다듬는다. 다듬목에 놓고 둥글게 말아 양쪽 모서리를 잘 맞춰 붕사를 바르고 은땜이나 황동땜을 한다. 보래에 끼워 제식(製飾)을 수백번 두드려 형태를 만들고, 줄과 사포로 정리한다.

여치나 메뚜기는 금속의 두께가 2㎜이상 되는 것으로 형태를 줄로 쓸어 만들고 납작줄로 정리하여 고리를 끼울 구멍을 뚫고 사포로 정리한다. 납을 염산에 잠시 적셔 놓았다가 원장식의 땜한 정 중앙에 여치와

메뚜기를 얹어 때운다.

하맥이는 가위로 재단한 후 줄로 정리하고 땜을 한 후 보래에 넣고 형태를 잡고 줄질한다. 딱가리도

줄질하여 맞추어 상납으로 땜한다.

 

(2) 칼집과 칼자루제작

 

장도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직육면체로 재단한 후 필요한 크기 만큼 깎아낸다. 칼집과 칼자루는 칼날이 들어가도록 활비비로 구멍을 뚫고 갈기로 표면을 정리한 후 칼날이 잘 들어가도록 거도(鋸刀)로 구멍을 뚫고 파낸다. 칼집과 칼자루는 사포로 문질러 윤기가 나도록 한다.

 

(3) 칼날 제작과 조립

 

칼날은 강철을 화덕에 넣고 1,000℃ 이상의 열을 가하여 달구면서 수십번 두드려 칼모양 형태로 다듬는다. 이때 커진 강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칼날을 짚단과 함께 아궁이에 10시간 넣고 불을 지핀 후 꺼내어서 천천히 식힌다.20) 칼날의 등과 날을 줄로 정리하고 숫돌에 갈아 나중에 녹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칼날의 등쪽과 날쪽의 형태를 줄로 잘 정리하고 숫돌로 날을 갈아 녹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칼자루 구멍에 송진을 끓여 붓고 칼날의 수뇌부분을 박는다. 칼자루에 앞매기를 끼운 다음 주석매기를 한다. 칼집은 사발이, 원장식, 앞 뒷매기를 끼운다. 원장식에 국화를 붙이기 전후에 모래마춤을 한다.21)이후

국화를 신주못으로 고정시킨다.

원장식의 고정을 위하여 앞쪽에 구리 못을 박아주고 메뚜기에는 고리를 단다. 고리에는 매듭을 달아 장식의 효과를 더해준다.

 

 

Ⅳ. 맺음말

 

장도는 금속, 나무, 뼈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23단계의 공정을 거쳐 만드는 장신구의 일종이다.

장도는 소도자(小刀子)로서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독특한 종형(種形)을 창출하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용, 장신구용, 호신용 등으로 계승 발전하였다.

그러나 의식주의 변화로 인하여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볼 수 있었던 장도가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장도하면 “은장도 = 정절의 상징”이라는 국한된 의미만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족예술 중 하나인 금속공예품 장도는 우리가 지키고 전승시켜야 하는 문화유산이다. 우리의 장도를 더욱 발전시키고 그 기법을 대대로 전승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장도장22)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주석

 

1) 최해율, 『몽골여자복식의 변천요인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200쪽.

 

2) 중국 당나라 장초금이 660년경 편찬한 역사서이다. 흉노, 오환, 선비, 부여, 삼한, 왜 등의 중국,

    한반도, 일본의 역사를 사류부(事類賦)로 정리한 것이다.

 

3) 오영민, 『조선조 칠보노리개에 대한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6, 59쪽.

 

4) 『高麗史』에서 刀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長刀, 劍, 長劍, 金銀重口大樣刀子, 金銀重口中樣刃予,

     金銀重口小樣刀子, 金銀裝錦細縷雲天長刀, 金銀裝錦細縷雲天玉劍, 金銀細縷剪刀, 金銀地鐵文剪刀,

     金銀細縷剪龍剪刀, 金銀裝錦匕首”

 

5) 최남선의 『古事通』에서는 “지금은 舊風이 되었지만 男女의 옷고름에 차는 粧刀는 그 刑制와 패용법이

    순전히 몽고풍습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6)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장도는 각종 의례에 쓰였던 귀중한 물품이었다. 『朝鮮王朝實錄』에서 장도에

    관한 기록은 총 30건으로 대부분 오례와 관련된 행사에서 사용하였다. 그중 장도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성종 20년(1489년) 10월 8일 “ 대가(大駕)가 평강현(平康縣) 직두등(直豆等) 사장(射場)에

    이르렀는데, 좌우상(左右廂)이 봉화산(烽火山)에서 몰이하였다. 종친(宗親)· 재상(宰相)및 승지(承旨)

    에게 작은 관혁(貫革)에 활 쏘게 하되 은장도(銀粧刀) 한 건으로 상(賞)을 하도록 명하고…….

    大駕至平康縣直豆等射場. 左右廂驅烽火山. 命宗宰及承旨射小的, 以銀粧刀子一事爲帑…….” 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은장도는 당시 권위를 상징하였다.

 

7) 광해군 2년 『東國新讀三綱行實』에서는 “丁酉俊亂 深閨女性 平素 粧刀를 지니고 있다가 有事時에

    순결을 위하여 自決 또는 抗敵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장도가 자기방어를 위한 용도로

    사용하였음을 의미한다.

 

8) 연산군 4년(1498년) 6월 15일 “예조(禮曹)가 아뢴 사치 금제(奢侈禁制) 절목(節目)을 명하여 의논하게

    하니……. 제6조. 갓끈은 예조에서 아뢴 대로 하고, 은장도자(銀粧刀子)는 단지 서민에게만 금할

    것이며……. 命議禮曹所啓禁制奢侈節目……. 第六條笠纓, 依禮曹所啓. 銀粧刀子只禁庶人…….”

    중종 17년(1522년) 8월 12일 “예조가 아뢰었다. 근래 사치 풍조가 더욱 심하여 상하를 막론하고 복식에

    있어서 중국 물품 쓰기를 경쟁하므로 이 때문에 물가가 뛰어오릅니다.…….마류(瑪瑠)·호박(瑚珀)·

    산호(珊瑚)·청금석(靑金石)의 입영(笠纓)과 은장도자(銀粧刀子)는 당상관 외에 사용하는 것을

    일체 금한다……. 禮曹啓: 近來, 奢侈尤甚, 服飾競用唐物, 上下無別. 因此, 物價踴貴…….瑪瑠、瑚珀、

    珊瑚、靑金石笠纓及銀粧刀子, 堂上官外一禁…….”

 

9) 김봉희, 『조선시대 여성 장신구의 현대적 변용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51 ~ 53쪽.

 

10)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한국의 화장 문화』, 2006, 60 ~ 61 쪽. 

 

11) 『京都雜記』“人犀 玳瑁枕香 黑角”, 『刀柄件記』 「壬午嘉時」 “蜜花刀柄, 銀具刀柄, 翡翠刀柄,

      孔雀石刀柄, 金剛石刀柄, 玉粧刀.”

 

12) 정동찬 외 3명, 『겨레과학인 우리공예』, 민속원, 1999, 188 ~ 193쪽.

     송영주, 『重要無形文化財 金屬匠에 관한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10 ~ 12쪽.

 

13) 송영주, 『重要無形文化財 金屬匠에 관한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8 ~ 10쪽.

 

14) 디 아모레 뮤지엄, 『디 아모레 뮤지엄 소장품 도록』, 2005, 79쪽.

 

15) 송영주, 『重要無形文化財 金屬匠에 관한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6쪽,

 

16) 크기가 작은 것은 메뚜기, 큰 것은 여치이다. 보통 을자도, 사각도, 팔각도 등은 메뚜기, 첨자도는

     여치라고 한다.

 

17) 을자도, 사각도, 팔각도 등은 사발이, 첨자도는 가락지라고 지칭한다.

 

18) 송영주, 『重要無形文化財 金屬匠에 관한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6 ~ 8쪽.

 

19) 송영주, 『重要無形文化財 金屬匠에 관한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17 ~ 22쪽,

     장도장 박용기선생이 제작하는 흑시팔각장도, 흑시을자도에 관한 제작과정을 정리 한 것이다.

 

20) 쇠의 강도를 완화시키는 작업인데 갑자기 쇠가 공기와 접촉하게 되면 다시 강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21) 모래마춤은 커다란 그릇에 아주 고운 모래를 깨끗이 씻은 후 깔때기로 퍼서 깔때기 밑으로 모래가

     빠져 나오는 동작으로 장도의 은은한 광택을 위하여 해주는 동작이다.

 

22) 현재 우리나라 장도장은 국가지정 2명, 시도지정 3명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은 전남

     광양의 박용기선생과 전남 곡성의 한병문선생으로 1978년 인정받았다. 시도무형문화재는 울산시의

     임원중선생(1997년, 제1호), 진주시의 임차출선생(1987년, 제10호), 영주시 김일갑선생(1989년, 제15호)

     이 있다. (문화재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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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08년 옛터민속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 여인의 은장도 그 순결함"展의 도록에 실었던 글이다.

장도의 이해를 돕고자 장도의 개념, 종류, 특징 등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던중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 성종代 왕이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여러 대신들에게 상품으로 하사한 것이

바로 은장도였다는 것이다. 당시 남녀 모두에게 은장도는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신구였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처럼 과거의 흔적을 찾아 일반인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일이 좋다.


[출처] 장도문화(粧刀文化)에 관한 고찰(考察)|작성자 hwa79sun
http://blog.naver.com/hwa79sun/30078665833

 

 

 

실용성과 장식성, 그리고 종교성이 함께 어우러진 장도(粧刀)

 

흔히 열녀에 관한 옛 이야기 중에는 위험에 처했을 때 은장도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그러고도 정절을

지켜내지 못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절개를 지키는 일화들이 간혹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은장도는 여성의 정절을 지키는 도구로 인식되며, 흔히들 은장도는 여성들만이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남성들도 멋과 위용으로 장도를 차기도 했는데, 그 때의 장도는 특별히 패도(佩刀)

라고 하였으며, 허리띠나 옷섶 안에 차고 다녔다.

 

이렇듯 남녀를 불문하고 칼을 멋이나 위용의 표시 혹은 노리개로 차던 오랜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일상생활

에서 칼이 필요한 상황을 누구나 쉽게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험한 칼을 늘 몸에 지니기는

쉽지 않은 바, 그러한 문제점을 극복한 것이 바로 장도이다. 손안에 꼭 잡힐 정도의 작은 크기라 지니기가

편리하고, 또한 반드시 칼집에 꽂혀 있어 다칠 염려가 없다. 더욱이 각종 재질과 문양으로 장식을 하여

장도는 위험한 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멋스러움을 드러내는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우리네 대부분의 민속품이 그렇듯이 장식으로 사용된 문양들은 그것이 가진 상징적 의미와는 달리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된 예가 많다. 사진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장도에 사용된 개구리 문양이 특히 그러하다.

자신의 모습을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변화시키고 성장해서는 많은 알을 낳는 개구리는 불로장생과 다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렇듯 상징적인 것이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주술적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가장 개구리다운 것이 가장 개구리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도는 칼이라는 실용성과 노리개로서의 장식성, 그리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종교적 여망까지를 망라하고 있는 우리네의 독특한 슬기가 엿보이는

문화재라 하겠다.

 

(주)포스코휼스, 실리콘가족, 1999년 3월호,

 

 

장도(粧刀)

 

장도는 칼집을 갖춘 작은 칼로서 휴대용 장신구로인데 신라 시대부터 남녀가 공용으로 찼으며 조선시대에는

노리개로 유행하였다. 남자들은 주머니, 담배쌈지와 더불어 주머니에 착용했으며, 여자는 치마 속 허리띠에

차거나 노리개의 주체로 이용하였는데 호신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장도는 칼자루와 칼날, 칼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칼자루와 집은 먹감나무, 대추나무, 쇠뼈, 대모, 산호, 금,

은, 옥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다.

나무로 만들 경우는 칼자루와 집이 맞물리는 곳에 쇠붙이 장식 띠를 두른다.

 

장식에 따라 맞배기 장도와 갖은 장도로 구분된다. 갖은 장도는 장도의 몸통 표면에 새김 장식을 하고

여러 가지 장식을 모두 사용하여 장도를 화려하게 꾸민 것인데 반해서 맞배기 장도는 원장석만을 씌운

소박한 장도를 말한다.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장도(粧刀)

 

장도(粧刀)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로 `비수`라고도 한다. 주로 호신, 자해(自害) 및 장식의 역할을 했고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부녀자들은 위험을 당했을 때 몸을 보호하거나 목숨을 끊어 절개를

지키는 것을 도덕적 미덕으로 여겨 그 상징으로 장도를 지니고 다녔다. 장도 중에 허리띠나 옷섶 안에

노리개를 달아 차고 다니는 것은 패도(佩刀), 주머니 속에 지니는 것은 낭도(囊刀)라 하였다.

 

패도의 역사는 매우 길어, 신석기시대에는 석도(石刀)를 장신구로 지녔으며 이는 청동기와 철기시대까지도

지속되었다. 고구려는 도려(刀礪)를 차고 이것으로 등급을 나타냈으며, 도려를 본딴 오자도(五子刀)가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었던 것으로 보아 장도가 삼국시대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다양한

형태의 칼들이 있었으며 당시의 것은 장식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남녀가 장도를 차는 풍습은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된 뒤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에는 일반화되었다.

 

문헌상으로는 임진왜란 때 작은 장도를 항상 지니다가 유사시 자결 또는 상대를 공격하였다는 내용이『동국

신속삼강행실도 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498년(연산군 4년)의 사치금제(奢侈禁制)

에서 서인의 은장도 사용을 금하였으나 잘 시행되지 않아, 1670년(현종11)에는 유생 잡직 및 서인남녀 중

은장도 차는 자를 논죄하라고까지 하였다.

 

이는 금과 은의 사용이 봉건사회에서 신분을 가리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며, 또 명나라에 금이나 은의

공물을 바치지 않기 위한 조처이기도 했다. 은장도의 재료는 은이고 칼날(도신)은 강철이며 칼날에

`일편단심(一片丹心)`등의 글씨를 새기기도 하였다. 은젓가락이 달려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외부에서

식사할 때 사용하였으며, 또 음식의 독의 유무(有無)를 분별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였다는 설이 있다.

 

 

 

 

 

 

 

 

 

 

 

 

우각장도

 

 

어피장도

 

 

 

 

은칠보장도

 

 

 

조선(朝鮮)시대 흑각장도
길이 : 14.4

 

이 장도는 아무런 장식 없이 원장석만을 한 흑각으로 만든 을자형맞배기로 주로 서민층에서 사용하였던

장도이다. 백동(白銅)으로 판(板)을 만들어 붙이고 칠보문을 장식하였으며 그 가운데에 사각의 틀을 만들어

중심에는 국화를 장식하고 둘레에 "질은 흰 눈 같고 빛은 흩어진 번개 같다(질여백설 광사산전質如白雪

光似散電)"이라는 명문을 새겨 넣었다.


 

 

 

조선(朝鮮)시대 상아장도

 

 

조선(朝鮮)시대 대나무장도
길이 : 17


이 장도는 원통형(圓筒形)으로 만든 장도로 칼집과 칼자루에 산수누각(山水樓閣)을 조각하였다.

장도의 중간 부분인 원장석은 박쥐와 매화를 장식하고 만초문(蔓草紋)으로 연결하여 금도금을 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조선(朝鮮)시대 대나무형 장도
길이 : 15.8

 

이 장도는 나무 전면에 대나무의 마디(竹節)를 조각하였으며 칼자루가 연결되는 중심부에만 대나무잎을

조각하였다. 장도의 칼은 많이 마모된 상태이며, 장도의 칼집과 칼자루의 끝을 씌운 하맥이와 칼자루

앞의 앞매기와 왕매기도 우골(牛骨)로 마무리하였다.

 

 

낙죽장도

 

 

화각장도..

 

 

조선(朝鮮)시대 마노공작석장도
길이 : 11.8 , 지름 : 1.4

 

일반적으로 보석으로 만든 장도는 상류층에서 사용하던 장도이며 칼집은 녹색의 공작석(孔雀石), 칼자루는 붉은 마노(瑪瑙)로 제작하여 색상의 대비가 잘 이루어지고 칼집과 칼자루를 동일한 재료로 사용하지 않아 서로 다른 재료에서 오는 느낌 때문인지 다른 장식을 하지 않아도 매우 고귀하고 품위가 높은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마노공작석장도(瑪瑙孔雀石粧刀)이다.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든 첨자(添子)에는

개구리를 부착하였으며 원장석에 부착되어 있는 구멍이 뚫려있는 메뚜기에 환형(環形)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어 끈이나 다회(多繪)를 연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조선(朝鮮)시대 목조각장도

길이 : 17.5

 

이 <목조각장도>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칼집과 칼자루 전체에 문양이 조각(彫刻)되어 있다.

칼집의 가운데 부분에는 금속으로 된 여치와 둥근 고리가 달려 있고, 이 고리에 색이 약간 바래고 단추와

술이 있는 녹색 끈이 달려 있다. 고리가 있는 쪽에 젓가락이 달려 있으며, 조금 휘어진 상태이다.

칼집의 앞면에는 소나무와 중국 옷을 입은 남자, 아자문(亞字文)이 있다. 뒷면에는 이층집과 탑, 물과 배,

배 안의 사람 등이 표현되어 있고, 칼집의 옆면에는 화초(花草)가 표현되어 있다. 칼날은 부식되었으며,

앞메기와 뒷메기도 녹이 조금 슬었다. 칼자루의 앞면에는 집 두 채와 소나무, 학, 물, 돛을 펼친 배와 사람이,

뒷면에는 소나무와 지팡이를 든 남자가 있다. 칼자루의 옆면에도 화초(花草)가 조각되어 있다.

 

 

조선(朝鮮)시대 백동장도

길이 : 15.7

 

이 유물은 백동(白銅)으로 만들어졌으며, 칼집과 칼자루 전체에 문양이 선각(線刻)되어 있다. 칼집의 가운데

부분에 여치와 둥글고 녹이 슨 고리가 달려 있고, 여치 주변이 초록색으로 부식되었다. 여치의 옆부분에는

앞뒤로 꽃 문양을 따로 만들어 붙였으며, 뒷면에 붙은 꽃 문양은 가운데 얼룩이 있다. 칼날은 끝이 뾰족하며

검게 변색되어 있고, 칼등이 두꺼운 편이다.

 

 

조선(朝鮮)시대 대모은장도

길이 : 11

 

이 유물은 대모(玳瑁)와 은(銀)으로 만들어졌으며, 칼집은 대모로 장식되었고 칼자루의 앞면에는 줄기와

이어진 들국화 두 송이가 양각(陽刻)되어 있다. 칼집의 대모는 투명한 갈색으로, 손상된 부분이 많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군데에 젓가락을 고정시키는데 이용하는 금속 띠가 둘러져 있다. 칼집의 가운데

부분에는 여치와 둥근 고리가 달려 있고, 고리가 달린 쪽은 끝이 뾰족하며 상단에 개구리가 달린 젓가락이

있다. 바깥에 드러나는 젓가락의 상단 부분은 검게 변색되어 있다. 칼자루의 뒷면은 문양 없이 매끈하며

칼날에 녹이 슬어 있다.

 

 

조선(朝鮮)시대 목장도

길이 : 13.6

 

이 장도는 을자형(乙字形)의 목장도로서 ‘을자맞배기’라고도 한다. 몸체는 나무로 매끈하게 을자형으로

깎았으며, 칼집과 칼이 맞닿는 부위에는 은을 덧대어 장식하였다.

그 은장식 위에는 앞뒤로 작은 국화 장식을 했고, 황색의 끈을 달아 휴대하기 편리하게 하였다.

 

 

조선(朝鮮)시대 옥투각장도

전체길이 : 16

 

이것은 옥제장도(玉粧刀)의 각 면마다 문양을 투각(透刻)하여 장식한 옥제투각장도(玉透刻粧刀)인데

특히 잘 깨어지는 성질의 옥에 문양을 복잡하게 조각한 것으로 보아 상류층에서 사용한 장도이다.

장도(粧刀)는 신분이 높을수록 장도의 재료가 귀하고 문양도 복잡한 것을 사용하였다. 칼집과 칼자루의

전면에 매화(梅花)와 만초문(蔓草紋)을 투각(透刻)하였으며, 금도금된 첨자(添字)를 만들어 그 위에 매화를

얹어 장식하였다. 칼자루의 중간에 사발이라는 띠가 있어 원장석과 칼집을 죄여주며 특히 옥장도 같이

미끄러운 장도를 잡기 쉽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

 

 

조선(朝鮮)시대 대모장도
길이 : 18.3

 

이것은 대모(玳瑁)로 제작하여 장식을 하지 않은 평맞배기이며, 대모는 바다거북의 등 껍질로 딱딱하고

아름다워 공예품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재료 자체가 아름다운 무늬를 가지고 있어 다른 장식은 하지 않고

장식부분을 단조롭게 백동(白銅)이나 은(銀)으로 테를 두른 것을 볼 수 있다.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든 첨자(添子)에는 매화를 얹어 장식하였으며, 장도의 가운데 부분에는 메뚜기가 있다. 장도에

단 끈은 끈목을 사용하거나 비단을 접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코! 맘에 쏙 들어라...)

 

 

조선(朝鮮)시대 아름다운 백옥장도

전체길이 : 8.4

 

장도와 장도집을 끼우면 乙형 모양을 이루는 백옥장도이다. 고리를 장도집과 한몸으로 조각하였으며,

몸 전체에 당초문을 양각하였다. 옥장도는 노리개의 주체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술이 남아 있지 않아 실제로

패용한 것인지 소장품으로 지니던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보통 노리개의 주체는 매듭에 연결되기 때문에

내구성이 강하게 만드나 헐겁게 끼워지는 것으로 보아 패용품보다 소장품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숙종이 동생인 명안공주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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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울의칼`이 출판하는 인터넷 잡지
글쓴이 : 사울의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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