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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전보(電報)

[참성단] 전보(電報)

입력 2023-11-16 20:03

대학 시절 지방 출신 학우들이 간혹 종이쪽지 받아들고 허둥지둥 고향으로 내려가는 풍경이 있었다. 전화가 흔했던 80년대 초입인데, 드물게 고향에서 날아 온 전보는 황망한 가정사로 귀향을 독촉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풍경도 곧 사라졌다. 통신 혁명으로 축전 외에 전보를 쓸 일이 없었다. KT의 서비스 종료로 다음 달 15일 전보가 13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단다. 전보를 잊은 지 오랜데도, 뭔가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도둑 맞은 느낌이니 야릇하다.

전보는 배달에 시간이 걸리는 편지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19세기의 혁신적인 통신수단으로, 국내에선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서울~인천 간 첫 전보를 발신하면서 시작됐다. 1965년 삼양라면 한 봉지가 10원이던 시절, 전보는 기본 10자에 50원을 받았다. 비싼 비용 때문에 '조부위독', '부친사망급래'와 같이 전달 내용을 한자로 압축한 전보체가 창안됐다.

구구절절하고 답장이 가능한 편지와 달리 간략한 메시지가 워낙 강력한 전보는 민간과 역사에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조부위독' 전보를 받고 한 걸음에 고향으로 달려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기(?) 중이던 손명순 여사와 맞선을 보고 한 달만에 결혼했다고 한다. 역사를 바꾼 전보도 있다.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외무상 짐머만은 멕시코 주재 대사에게 미국이 참전하면 멕시코가 미국의 배후를 치도록 하라는 극비 전보를 보냈다. 영국이 이 전보를 가로채 미국에 흘렸고, 열 받은 미국은 입장을 바꿔 참전했고, 독일은 패망했다.

 

전보의 퇴장은 통신기술 발달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다. SNS 매체로 공간의 제약 없이 제한 없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대다. 하지만 간략한 전보체에 가족의 유대와 사회적 예의가 살아숨쉬던 시절과 달리, SNS 세상의 메시지 언어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무의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보 시대에 상상할 수 없었던 고독사가 실시간 통신 시대에 흔해진 건, 소통의 본질이 사라진 통신 만능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KT가 전보 서비스를 종료하기 전에 현재가 과거와 미래에 보내는 마지막 전보를 공모하는 이벤트를 벌이면 좋겠다. 과거에 신세졌고 미래에 빚지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전보체로 선명하게 각성할 수 있지 싶다. 전보를 역사 속으로 보내는 의식으로도 적당하고….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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