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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초등학교 역사

1949년 사상면 삼일운동 기념식

1949년 사상면 삼일운동 기념식

 

해방 후 1946년부터 전국적으로 3.1운동기념식이 진행되었다. 특히 1949년은 3.1운동 30주년에 해당되어 전국각지에서 거행되었는데 부산의 경우 민전(民主主義民族戰線 : 미군정 시기에 서울에서 결성된 좌파 계열의 연합 단체임)주최의 3.1운동 기념식이 공설운동에서서 펼쳐졌다. 당시 부산에서 발행되었던 민주중보(民主衆報)의 3월 4일자 기사에 의하면 동래군 사상면에서도 아래 기사와 같이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중보사의 보도 기사를 살펴보면 

사상 삼일기념 성대(沙上三一記念盛大)

사상면 주최 3·1기념대회는 지난 1일 상오 10시부터 사상교정에서 면민 800여명 참집하에 거행. 면민운동대회등 다채로룬 행사가 있었다(사상)

 

이러한 사실은 덕포2동에 살고있는 사상토박이 주영복(1931년생)은 이 기념식에 참석하였으며, 기념식 후

사상면민 운동회가 동별 시합으로 이어졌는데, 자신은 혈기왕성한 18세의 청년으로 괘법동 대표로 달리기에 참여하였다고 증언해 주었다. 

 

1948년 12월 8일 신축교사 낙성식날의 사상초

상기 사진은 1948년 12월 8일에 학교 건물을 신축하고 낙성식하는 모습으로 그로부터 약 3개월 후 이 장소에서 사상면 주최 3·1운동(三一運動) 기념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 동래군 사상면 주최 3·1운동(三一運動) 기념대회에는 특별한 연사가 참석하였다. 1919년 탑골공원에서 3·1운동에 참석한 당시 경성의전 1학년생이었던 황용주(黃龍珠)선생으로, 이 사실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살고 있는 황상숙(황용주 장녀)이 증언하고 있다. 황용주 선생은 사상국민학교의 전신인 사립명진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동래고보(현 동래고등학교)를 거처 1918년 경성의전에 입학하였다. 

 

1919년 3월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를 행사를 한뒤 서울시내를 돌며 시위를 하였으며, 3월 5일은 대한문앞에서 2차 시위를 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8개월간 옥고를 치른 경력이 있으며, 국가기록원에 당시 재판기록이 남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위의 기사를 보도한 민주중보는 어떤 신문일까?

 

민주중보(民主衆報)는 1945년 8월 광복을 맞은 다음 군정시기인 9월 1일 발행된 한글 지역신문 일간지이다.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어로 된 지역 일간지 부산일보에 근무하고 있던 이갑기 등 한국인 종업원들이 부산일보의 변형판인 일본인 세화회보를 찍어 내는 한편 한글로 발행했다. 부산소식을 주로 보도하였으며 중보(衆報)는 1945년 9월 20일  '민주중보(民主衆報)'로 제호 바뀌였으며, 1949년까지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