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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이야기

허황후 도래전설

 

강서구는 예로부터 대외교역의 길목으로, 특히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의 초행로에 관한 많은 전설과 유적을 남기고 있다.

 

가락국기 내용

건무24년 무신 7월 27일에 구간(九干)이 조알하면서 “대왕(김수로왕)이 강림하신 이래로 좋은 배필을 얻지 못하였는데 신 등이 둔 처녀로서 가장 좋은 이를 택하여 궁중에 뽑아들여 배필을 삼으로서” 하니 수로왕은, “내가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을 받은 것이니 나의 배필로 왕후가 되는 것도 또한 하늘의 명령이 있을 것이니 경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고 드디어 유천간에게 명령하여 “빠른 배와 준마를 가지고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라” 하고 신귀간에게는 승점(乘岾)으로 가게 하였다.

문득 바다의 서남쪽 모퉁이로부터 붉은 빛의 돛을 달고 검붉은 기를 휘날리며 북쪽으로 향하는 배가 있어 유천간 등이 섬 위에서 횃불을 드니 곧 내리려 하여 신귀간이 대궐로 달려와서 아뢰니 수로왕이 듣고 기뻐하며 구간 등을 보내어 예를 갖추어 맞이하여 대궐안으로 모시고 오도록 하였는데, 왕후가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경솔히 따라 가리오” 하므로 유천간 등이 돌아와 왕후의 말을 왕에게 전했다.


왕은 옳게 여기고 유사(有司)를 거느리고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 기슭에서 장막을 치고 왕후를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 별포진 머리에 배를 매고 육지에 올라 높은 언덕에 올라서 쉬면서 바지를 벗어 폐백으로 삼아 산령에게 보냈다. 왕후를 모시고 온 신하 두사람의 이름은 신보와 조광이요, 그들의 아내 두사람의 이름은 모정과 모량이며 노비까지 아울러 20여명인데 가지고 온 금수능라, 의상필단, 금은주옥, 그리고 경구의 장신구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왕후가 점점 행재소(行在所)에 가까이 오자 왕은 나아가 받아 함께 유궁으로 들었다. 왕후를 모시고 온 신하와 여러 사람들이 뜰 아래에서 왕에게 인사를 드리고 곧 물러가자 왕은 유사에게 명하여 왕후를 모시고 온 신하 부부에게는 따로 따로 방을 주도록 하고 그 아래의 노비들은 한 방에 5~6인씩 있도록 한 뒤, 의복.필단.보화 등을 주었으며 군인을 배치하여 그들을 보호하게 하였다.


왕과 왕후가 침전에 들었을 때 왕후는 왕에게 조용히 말하길,“나는 본래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성은 허(許)씨요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금년 5월에 본국(아유타국)에 있을 때 부왕과 황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제밤 꿈에 함께 상제(上帝)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首露)는 하늘이 내려 보내어 등극하게 한 사람인데 배필을 아직 정하지 못하였으니 공주를 보내어 짝을 삼게 하라!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잠을 깬 후에도 상제의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다.너는 이 자리에서 우리를 작별하고 그 곳으로 가거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에 떠서 멀리 증조(蒸棗)를 찾고, 하늘로 가서 멀리 반도를 찾아 진수로 외람되게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하니 왕이 말하길 “나는 나면서부터 자못 신성하여 공주가 멀리서 오는 것을 먼저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올린 납비의 청을 듣지 않았는데 이제 현숙한 그대가 스스로 이렇게 왔으니 이 몸의 다행이오” 하고 드디어 동침하여 두 밤이 지나고 또 하루 낮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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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출처: 정보화마을

http://tomato.invil.org/sight/gaya_ruins/chohaengro/contents.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