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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반구대, "울산 암각화 전시관’- 우리 민족의 최고(最古) 식품 박물관

                                반구대, "울산 암각화 전시관’

                      - 우리 민족의 최고(最古) 식품 박물관 -

 

◇상공에서 보면 고래형상을 닮은 대곡리 반구대의 ‘울산 암각화 전시관’. 오는 30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오는 5월 30일 문을 열게 될 울산의 대곡리 반구대 ‘울산 암각화 전시관’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건립에 뜸을 들인지 7년만의 일이다. 지독하게 척박한 문화유적 보존국에서 울산의 암각화를 그나마 조금더 알릴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경하하고 또 경하할 사건이다. 환경단체의 끈질긴 간섭에도 용케 태어났다. 그래서 곳곳에 난산(難産)의 흔적이 보이긴 하나 앞으로 잘 키우면 훌륭한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 그곳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아직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주거공간인 동굴 속에 남긴 ‘동굴벽화(cave art)’들도 다수 간직하고 있어 선사미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1979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라스코(Lascaux) 동굴벽화는 1만7000년 전에 그려진 현존 인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라스코란 이름의 동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를 그대로 본떠서 만든 ‘모조동굴(라스코Ⅱ)’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200미터 정도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 모조동굴로, 진짜는 본존상의 이유로 폐쇄 되었다. 라스코 동굴은 1940년 9월, 네명의 소년이 발견했다. 그때는 2차대전 중이라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없었다. 세상에 정식으로 소개된 1948년 이후로는 하루에 1,000명 내지 1,500명 가량이 몰려들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제 모습을 간직한 벽화는 좁은 공간을 꽉 채운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와 이산화탄소에 시달려 질식하기 시작했다. 폐쇄가 유일한 보존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요구에 프랑스 정부는 1963년 동굴 폐쇄를 결정, 그후 1983년 7월 모조동굴 ‘라스코Ⅱ’가 문을 열었다.
  석기시대에 그려진 현존 인류 최초의 그림이 있는 라스코 동굴의 동굴벽화에는 6백 마리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뿔이 돋보이는 들소가 있는가 하면 그 아래는 말과 사슴도 보인다. 그러나 야수나 조류, 물고기 등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없다. 오직 초식동물들 뿐이다.
그 시절 인류에게 사냥은 생존의 조건이었다. 먹이에 대한 연구, 먹이를 잘 잡게 해달라는 기원은 너무나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벽에다 그들은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움직이는 사물 뒤에 어떤 힘이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그렸던 것이니, 이는 곧 주술이다. 주술적 신앙은 당시 인류의 삶의 특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림의 완성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대접 받는다.

  또 다른 동굴벽화를 이야기하자면 스페인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벽화를 빼놓을 수 없다. 알타미라의 명성은 1만5000년 의 것이라는 역사성과 뛰어난 예술성 때문이기도 하나 처음 발견한 사투우올라(satuola)라는 사람의 불굴의 용기가 세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1879년 그가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을 때는 그림의 뛰어난 세련미 때문에 아무도 선사시대의 것으로 믿으려하지 않았다.
19세기 중엽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처음 발견,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었던 프랑스 학자들은 스페인의 알타미라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알타미라는 자연 프랑스와 스페인의 자존심 대결이 됐다. 하지만 사투우올라는 프랑스 학자들에게 자료를 보내는 등 계속 설득했다. 그무렵 다행히 스페인과 가까운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선사시대 동굴벽화가 10개 이상 발견되었다. 이렇게 되자 프랑스학자들도 더 이상 알타미라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에 됐다. 그들은 1902년 ‘인류학’ 잡지에 알타미라는 선사시대 것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논문을 실었다. 그 사이 장장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정작 기뻐해야 할 사투우올라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하지만 알타미라 선사박물관은 정작 닫혀있다. 이곳 역시 보존상의 이유로 오래전 폐쇄됐다. 다만 마드리드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앞뜰에 모조동굴이 있다. 1962년 270m나 되는 동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방 한칸에다 복원했다. 라스코에서처럼 들소와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 일색이나 파스텔톤이 강한 색상 때문에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프랑스의 이탈리아 경계지점 산간마을 땅뜨의 ‘몽베고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와 비교된다. 110년 전 발견된 이곳 암각화는 프랑스 자연사학자 르블리교수가 30년간 연구했다. 암각화 그림이 3만5,000점이 그려져 있으나 반구대 암각화 290여점은 맞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1cm 앞까지 가서 볼 수 있다니 반구대 암각화보다 접근성이 좋다는 점에서 부럽다.

 5월 따사로운 햇살 아래 웅장한 몸체를 드러낸 ‘울산 암각화 전시장’은 큰 고래 형상으로 대곡리 암각화를 대신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에 모조 ‘라스크Ⅱ’가 있듯 ‘반구대 암각화Ⅱ’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한동안 박물관이냐 전시장이냐로 논란도 빚었지만 전시관으로도 족하다. 물건너 바위에 세겨진 암각화 형상을 각종 자료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반구대 암각화를 중심으로 울산 선사유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동이 갖춰져 있지 않아 여타 관광지 유적 정도로 폄하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1970년 천전리 각석 발견 이후, 1971년에 발견돼 세상의 이목을 끌게된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학자들이 관심을 갖게됐다. 하지만 연구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너비 10m, 높이 3m의 바위면의 형상을 확인하는 작업에 바빴다. 사냥꾼, 어부, 샤먼 등의 인물상과 사슴, 호랑이, 멧돼지, 소, 토끼, 고래 등의 동물상을 놓고 시대의 생활상과 암각화를 만들어 낸 조상들의 유입 경로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우리 연구수준의 한계라고만 하기에는 아쉽다.
만약 반구대 암각화가 문화선진국에서 발견됐다면 30여년을 훌쩍 넘기면서 세계적으로 각광 받아 인류 문화유산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전시관이 문을 열고 앞으로 연구동을 확보해 세계적인 암각화 연구가들을 초빙, 아니 찾아오도록 하는 일이 남아 있다. 또한 그동안 환경단체의 간섭으로 못 갖춘 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특히 반구대와 전시관을 비롯한 대곡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시급하다.
언젠가 TV에 비친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곡리 계곡 일대는 장관이었다. 

 

참고 : 울산매일신문, 김병길 <반구대 암각화는 그날도 눈부셨다> 중에서
08/05/21

 

프랑스, 스페인의 암각화는 현존 그들 조상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으나,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 한반도의 조상들의 역사이며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식품독성 그리고 안전
글쓴이 : 스토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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