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Winter 2006 Vol.20) 고급와인에 대한 이해



고급 와인이 특별한 이유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인가요?” “이건 별로 안 좋은 와인이죠?” 좋은 와인 혹은 나쁜 와인… 와인이 마치 인격을 가진 사람처럼 좋고, 나쁜 성향을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같은 와인이라 하더라도 마시는 사람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와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이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절대적으로 누구에게나 좋은 와인은 없다는 말도 되겠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평범한 와인과 고급 와인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우리가 고급 와인이라고 말하는 와인들은 일반 와인에 비해 병입한 후에도 셀러(Cellar)*에서 보관 가능한 기간이 상당히 길며, 최적의 맛과 향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숙성을 필요로 한다. 출시된 후 특별히 숙성을 하지 않아도 마시기에 괜찮은 대중적인 와인들에 비해 이러한 과정이 번거로울 수도 있겠지만, 충분한 숙성을 거친 고급 와인이 보여주는 풍부하고 우아하며 복잡 미묘한 맛과 향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고급 와인을 잘 시음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좀더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렇게 충분한 시간을 통해 한껏 숙성된 상태에서 최고의 향과 맛, 밸런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의 고급 와인이 갖는 장점 중의 하나는 비교적 숙성이 되지 않은 어린 상태, 또는 적당히 숙성된 상태, 그리고 오랜 숙성을 거쳐 원숙한 상태 모두 각 시기에 따른 나름대로의 좋은 밸런스와 풍미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새로 출시된 좋은 빈티지(vintage)*의 고급 와인을 여러 병 구입해 셀러에 잘 보관한 뒤 몇 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시음함으로써 그 와인이 갖는 다양한 변화와 느낌을 즐겨보는 것도 고급 와인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고급 와인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다른 와인에서 찾을 수 없는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와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음한다면 좀 더 특별한 또는 유일한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단지 괜찮은 와인 한 가지를 시음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필자가 그 동안 다양한 와인들을 시음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각각의 와인들이 마치 하나의 그릇과 같다는 것이다. 그릇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가치를 갖지만, 그 안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흥미로울 수 있다. 다양한 크기의 그릇처럼, 각각의 와인도 다른 크기와 깊이를 가지며 그 안에 담겨있는 가치들도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커다란 그릇과 작은 그릇이 각기 나름대로의 가치와 쓰임새를 가지듯 와인도 그러하다.
많은 애호가들은 아름다운 그릇을 감상하듯, 귀한 와인을 직접 보거나 레이블을 갖는 것, 마셔보는 기회를 갖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흥분과 즐거움을 갖게 된다. 그러나 가끔은 이러한 기대를 갖고 마신 와인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도 보게된다. 와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럴 수 도 있겠고 몇몇 최고급 와인의 경우 출시된 지 대개 5~10년 사이에 침잠기(沈潛其)에 들어가 제대로 된 풍미를 거의 느낄 수 없을 때도 있으며, 그릇 안에 담긴 또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와인이 가진 특별한 의미 와인의 가격이 높은 것은 때로는 시장에서의 공급과 수요의 법칙도 작용하겠지만, 결국 기본적으로는 그의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 와인의 가격이 비싸고 유명하기 때문에, 의당 좋은 와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일까? 정작 왜 그 와인이 누구나 한번쯤 마시고 싶어하는 와인이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찌하여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가 보르도는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최고급 품종이라 할 수 있는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아닌 메를로(Merlot)*만으로 그러한 대단한 와인을 만들 수 있었는지…메독(Medoc)*의 그랑 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e)* 와인이 아닌 등급도 없는 포므롤(Pomerol) 지역의 와인이 프랑스 보르도 최고의 와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인지..
필자의 경우 예전에 운이 좋게도 비교적 짧은 시기 동안 꽤 여러 번 샤토 페트뤼스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실 처음엔 여느 애호가들과 마찬가지로 샤토 페트뤼스를 마신다는 사실만으로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제대로 시음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 네 번 계속 시음을 해나가면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완벽한 균형과 조화에서 오는 우아함이었고 그 만이 가진 유일한 아름다움이었다.

 

 

 

 

 

 

 

   
 

 

 

 

 

 

 

 

 

 

 

 

 

 

 

 

 

 

  

알려져 있듯이 거의 100%에 가까운메를로 품종의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까베르네 소비뇽에 못지 않은 상당히 견고한 구조와 힘을 보여주면서도 세련된 산도와 부드럽고 매끄러운 타닌(tannin)*의 질감은 메를로의 특성을 결코 잃지 않았고, 어느 요소 하나도 지나침 없이 완벽한 균형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어느 한 곳도 이지러짐이 없는 완벽한 균형을 가진 둥근 그릇처럼… 이 그릇은 포도나무가 뿌린 내렸던 그 대지의 흙으로 만들어져 모든 것이 녹아 내릴 듯한 불가마 속에서 그렇게 단단하게 구워졌던 것일까? 샤토 페트뤼스의 특별한 토양에서 비롯되었을 그만의 개성 있는 풍미들은 팽팽한 긴장감마저 주었지만 전반적으로 미려한 과일향 속에서 단아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사실 샤토 페트뤼스에 대한 필자의 시음 노트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 샤토 페트뤼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와인을 마시게 된다면, 취향에 따라서는 오히려 1/10 정도의 가격을 가진 풀 바디(full bodied)*한 칠레의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보다 오히려 못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가격과 와인의 맛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와인을 평가하고 시음함에 있어 가격적인 기준이나 상대적인 평가 기준보다는 좀더 그 와인 자체가 가진 매력과 가치를 찾아내어 충분히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고급 와인이 갖는 가치는 원재료인 포도와 양조에 사용된 고급 오크통(oak barrel)*, 고급 레이블(label)에서 매겨지는 가격, 그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단순히 산도와 탄닌, 알코올의 느낌을 평가하고 수많은 향과 풍미들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묘미가 있다.
와인이 가진 전통과 역사, 명성, 와인 생산자의 철학과 독창성, 다른 곳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유일한 떼루아(Terroir)* 등을 함께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때 그 와인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함께 마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고급 와인의 가치에 대한 소고를 마치며 생각해본다. 사실 필자는 특별한 와인만을 찾는 사람이거나 더욱이 고급 와인예찬론자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와인 한 병 한 병이 갖는 각각의 고유한 의미들을 인식한다면, 그 와인의 가격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우리들은 더욱 독특하고 가치 있는 경험들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들에게 소중히 기억되는 특별한 와인은 비싸고 희귀한 고급 와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겁게 마셨던 바로 그 와인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중히 간직되는 기억들처럼, 이러한 와인들이 하나씩 여러분들의 삶에 즐거움과 기쁨의 향기로 영원히 남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맘이다.

출처 : 와인리더소믈리에
글쓴이 : 뾰로롱~★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