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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들

<1980년대 월간 스크린 컬렉션>을 오픈하다

 

글: 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사진: 박스8주식회사(더 스크린) 제공

 

한국영상자료원은 KMDb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제목만 보면 IMDb 아류 사이트 같지만, 실제로는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상당히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견실한 곳이다. 일단 방문해 보면 데이터 베이스 뿐 아니라 생각보다 괜찮은 콘텐츠가 많다는데 놀랄 것이다. 거기에 컬렉션 섹션이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라는 아카이브 기관이 운영하는 만큼 보존하고 있는 여러 자료들을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서비스하는 창구다. 목록과 해제만 소개되는 경우들도 있지만, 원문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코너도 많다. 어느 박물관, 미술관, 아카이브 기관이건 자신들의 ‘컬렉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장한 품목들이 곧 그 기관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자료원이 그 문제의식을 가지고 ‘컬렉션’을 정리하고 공개한 것이 2010년대 중후반부터이니 한참 늦은 셈이다. 구성원들조차 자료원이 영화 기관인지 아카이브 기관인지 헷갈렸던 탓일까?

 

* 영화잡지 <스크린> 모음

어쨌든 그 컬렉션 섹션에 이번에 ‘1980년대 월간 스크린 컬렉션’이 오픈했다. <스크린>은 1984년 3월호를 창간호로 하여 무려 2010년까지 26-27년 동안 발간된 초장수 영화잡지다. 1995년 창간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씨네 21>을 제외한다면 한국 영화잡지 사상 가장 오래 유지된 잡지라 하겠다. 이번 컬렉션은 그 긴 기간 중 창간호부터 1990년 12월호까지 총 82권의 호수를 원문으로 서비스한다. 이후 1990년대도 준비 중에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영화잡지의 전성시대가 저물면서 <스크린>도 종간하게 되었지만, 발간 초기 <스크린>은 잡지계를 통틀어 베스트셀러에 속하는 초 인기 아이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4년 <스크린>이 창간할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 영화잡지는 영화진흥공사가 발간하는 기관지인 <영화> 정도밖에 없었다. <영화>지도 나름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였지만, 아무래도 기관지니 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는 업계지의 성격이 강했다. 1989년이 되어서야 <로드쇼>가 나오고, 1995년에 <키노>와 <씨네 21>이 발간되며 짧은 영화잡지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말하자면 <스크린>은 척박했던 1980년대 영화 (잡지) 문화를 그야말로 ‘하드 캐리’했던 셈이다.

 

월간 <스크린>의 충격은 다른 잡지들과는 차원이 다른 ‘컬러’로부터 비롯된다. 이전, 혹은 당대(당대라고 해야 <영화>지 밖에 없었지만) 영화잡지들이 초반 몇 쪽만 유광 컬러 면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갱지와 같은 용지에 낮은 품질의 사진들을 점점이 박아 넣은 진지하고 유익하지만 따분한 고담준론, 혹은 아예 그 반대로 확인되지 않는 스타들의 스캔들로 페이지를 채웠던 반면, <스크린>은 달랐다. 브룩 실즈나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등 당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소위 ‘책받침 스타’들을 활용한 표지부터,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유광용지에 스타들과 할리우드 신작들의 소개, 광고면을 컬러 사진으로 도배했다. 다른 잡지들이 보여준 세계가 흑백이었다면 <스크린>의 세계는 총천연색이었다. <스크린> 편집진도 이 차별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창간 당시부터 “Read-Magazine에서 See-Magazine 시대를 연 한국 유일 국제종합연예지!!”라고 광고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 스크린 라이브러리-감독론(스티븐 스필버그) ('84 3월호 PDF 자료 208p~210p 해당 해당)

* 스크린 라이브러리-영화용어&영화기법②조명 ('84 11월호 PDF 자료 184p~186p)

그렇다고 <스크린>이 그저 그런 킬링 타임용 볼거리 잡지였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막상 내용들이 유익하고 때로 진지해서 놀랄 정도다. 이걸 당시 편집진은 ‘당의정’ 전략이라 불렀다. 즉 몸에 좋은 쓴 약을 달달한 껍질로 포장하듯 화려한 화보와 스타들의 동향이라는 포장 아래에 꼭 알아야 할 영화이론과 국내외 주요 작가들, 한국영화산업과 정책의 동향을 가득 채웠다. 일테면 당대 영화팬들의 교재와도 같았던 일종의 책속의 책 ‘스크린 라이브러리’ 코너는, 씨네필이라면(당시는 씨네필이라는 명칭은 없었다만) 반드시 알아야 할 누벨바그나 시네마노보와 같은 영화사조, 영화기호학이나 정신분석학 혹은 페미니즘과 같은 이론, 빔 벤더스, 따베르니에 형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작가 감독들, 그리고 반드시 보아야 할 세계영화사의 걸작들을 소개했다.

 

그저 홍보나 뒷이야기 수준으로 소개했던 <에일리언>, <터미네이터>, <그랑 블루>, <마지막 황제>와 같은 당시의 최신작들과 스티븐 소더버그, 데이비드 린치, 올리버 스톤, 제임스 카메론, 뤽 베송, 로버트 저멕키스를 비롯한 스필버그 사단, 배창호와 같은 이제 막 ‘뜨는’ 감독들, 이제 막 인기를 얻어가던 탐 크루즈, 리버 피닉스, 소피 마르소, 강수연, 최진실, 주윤발과 같은 스타들에 대한 소개 기사조차도 이젠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당시 편집진은 아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OPENING STAR : 홍콩스타 주윤발의 모든것 ('88 1월호 PDF 자료 49p~50p 해당)

1980년대 월간 <스크린>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꾸준히 진화하고 발전했지만, 단 하나의 도약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홍콩영화의 붐을 견인했던 1988년부터 1989년 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1988년 이래 한국에서 홍콩 느와르로 대표되는 새로운 홍콩영화의 인기는 가히 할리우드에 버금갈 정도였다. <스크린>은 이 흐름에 편승했다. 어쩌면 편승했다기보다는 선도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스크린>은 홍콩 뉴웨이브가 한국에서 제대로 개화하기도 전인 1988년 2월호에 바로 특집을 편성한다. ‘홍콩 뉴 시네마와 황금의 스타군단’이라는 제목이었다. 이후 <스크린>은 <영웅본색>, <천녀유혼>, <천장지구>, <첩혈쌍웅>과 같은 홍콩영화와, 주윤발, 왕조현, 유덕화, 장국영, 임청하 등 홍콩 스타들에 대한 화보와 기사로 부지런히 지면을 채우며 홍콩영화의 부흥에 일조했고, 홍콩영화는 <스크린>의 부흥에 일조했다.

 

이 컬렉션이 80년대 어린, 혹은 젊은 시절을 보낸 지금의 기성세대(아마도 최소 40대 이상)에겐 과거의 진한 향수를 줄 것은 명확하다. 어느 한 호라도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과거의 자신으로 빙의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독자들에게 어떤 효용을 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연히 진지한 연구자들이나 당대 영화문화의 탐구심에 복받친 ‘덕후’들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겠지만...

* 마이클 잭슨 & 패밀리의 모든것 ('85 2월호 PDF 자료 252p~253p 해당)

첨언할 것이 있다. <스크린>은 탄생기 영화지가 아닌 종합연예지를 표방했다. 그래서인지 팝, 뮤직비디오, 가요, TV, 연극, 출판 등 온갖 분야를 다룬다. 특히 이 잡지가 창간되었던 1984년은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 듀란 듀란 등으로 대표되는, 팝의 세계적인 전성기이자 한국에서의 전성기기도 했다. 이 스타들의 브로마이드, 포스터들이 함께 증정되곤 했고,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팝스타들의 동향들이 한가득 실렸다. 영화팬 뿐 아니라 팝을 포함한 대중음악 팬, TV미니시리즈 팬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면이 많다는 말이다.

 

이번 컬렉션에는 서비스 되는 모든 잡지들은 오랜 기간 도서관에서 열람되던 것들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파손되거나 아예 없는 페이지들도 꽤 많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보시는 분들은 불편할 것이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그 대신 서비스되는 82개 전 호의 목차를 포함한 해제자료집이 첨부되어 있다. 이와 함께 공개되는 잡지의 디지털 뷰어에는 북마크(좌상단 책갈피 모양 버튼)가 수록되어 있다. 북마크가 열렸을 때 화살표 표시가 있는 하위 항목들은 접혀 있는데, 화살표 표시를 누르면 하위 항목들까지 모두 펼쳐 볼 수 있다. 바라건대 이 컬렉션을 통해 척박함, 혹은 에로영화로 대표되던 1980년대 영화문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껴보는 계기가 되길.

1980년대 월간 <스크린> 컬렉션

출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들 < 웹진 < 기관소식 < 기관소개 - 한국영상자료원 (koreafil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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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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