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삼락생태공원은 조선시대부터 주민이 살고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 낙동강일천식 공사로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을 버리고 타지역으로 옮긴 내력이 있다. 6.25 전쟁 중 휴전협정이 맺기전인 1952년 11월 에 낙동강 황무지 개척 계획을 수립, 상이군인을 이주 시키는 계획이 있었다. 당시 민주신보에서 이에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 2건을 아래와 같이 인용하여 소개한다.
대한군경원호회 부산분회, 대한개척단의 낙동강 삼각주 황무지 개척 계획을 비판
제목 : 대한군경원호회 부산분회, 대한개척단의 낙동강 삼각주 황무지 개척 계획을 비판 |
년월일 : 1952년 11월 13일 |
출전 : 민주신보 1952. 11. 16 |
대한군경원호회 부산분회, 대한개척단의 낙동강 삼각주 황무지 개척 계획을 비판
당국과의 긴밀한 사전연락도 취하지 아니하고 현지의 실정도 잘 모르면서 상이군인을 歸農시킨다는 미명 아래 낙동강 하류의 하천부지에 독단적으로 입주하려다가 마침내 그 사기성이 폭로되어 세인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게 된 사회사업단체가 있다.
대한군경원호회 부산분회에서는 시내에서 방황하고 있는 상이군경 및 유가족을 일정한 장소에 수용하여 自活에의 길을 열어줄 양으로 앞서부터 동래군 沙上面 낙동강 하류에 형성된 수십만 평의 三角洲 내의 황무지 개간안을 착상한 바 있었는데,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수억 원의 자금조치를 비롯하여 국방부 및 사회부 당국으로부터의 진지한 협력이 있어야만 하고 도당국과 현지 주민의 여론도 참작하여야만 되는 등 구체적 사업계획 수립에 있어서의 절차가 치밀하여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方洙源씨가 단장으로 되어 있는 대한개 척단에서는 이미 상이군인 아닌 고아들을 먼저 전기 하천부지 안에 수용시키는 태도로 나왔고 심지어는 군경원호회 운운하여 귀농 희망자의 모집광고를 독단적으로 지상에 발표하는 등의 처사를 취하였다.
이에 전기 계획이 아직 구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군경원호회 부산분회에서는 13일 그 태도를 명백히 하여 문제의 한국개척단과는 하등의 관련성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다만 순전한 황무지를 개척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현지를 충분히 답사한 뒤에 그 구체안을 비로소 세울 것이라 하였고 또한 주민의 기득권을 침해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는 것을 밝혔다.
민주신보 1952. 11. 16
대한개척단, 황무지 개간사업이 모략 중상으로 난관에 봉착했다고 호소
제목 : 대한개척단, 황무지 개간사업이 모략 중상으로 난관에 봉착했다고 호소 |
년월일 : 1952년 11월 17일 |
출천 : 민주신보 1952. 11. 17 |
대한개척단, 황무지 개간사업이 모략 중상으로 난관에 봉착했다고 호소
조국통일전선에 귀중한 몸을 바쳐 국가민족을 위하여 피로써 싸웠건만 사회의 버림을 받고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백의의 용사들이 닥쳐오는 겨울을 눈앞에 두고 거리에서 거리로 그날의 끼니를 구하며 방황하고 있는 실정은 국민적 탄식을 자아내고 있을 뿐더러 일반 사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는 이때에, 그대로 자활의 길을 개척하여 수많은 상이군인들의 등불이 된다는 정신 아래 총검 대신에 괭이를 매고 용약 … 황무지개발에 나선 백의의 전사들이 새마을 건설에 이바지하고 있는 눈물어린 사실이 일반에 알려졌다. 方洙源씨를 단장으로 하는 대한개척단의 따뜻한 온정 아래 지난 10월 23일부터 동래군 沙上面 낙동강 하류에 있는 하천분지의 황무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귀농의 길을 택한 50여 명의 상이군인들은 1일 1식이 어려운 처지를 무릅쓰고 새마을 건설을 위하여 수십만 평의 황무지 개간에 착수하였다.
특히 이 개간에 착수할 무렵에는 金국방부차관을 비롯하여 군경원호회 부회장 鄭準씨 등이 현지에 참석하여 황무지 개간에 착수한 용사들을 격려한 바 있으며, 개척단의 열성적인 지원 아래 난관이 개재된 개간사업은 예상 이외로 진척되어 현재는 이상농촌건설에 서광이 빛났으나, 이 황무지의 개간을 노리고 있는 인사들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기회만 있으면 이외의 이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갖은 모략중상을 자행하고 있을뿐더러, 특히 100여 명의 고아를 다시 이 자리에 수용하게 되어 가뜩이나 기근에 허덕이고 있는 동 개척단의 부담을 가중시켜 설상가상격으로 백의의 용사들의 새마을 건설에 暗影을 호소하기 위하여 15일 하오 본 자리를 찾아온 동 개척대 대장 崔景夏군 이하 부대장 權英根군, 개척주임 李秉植군은 눈물을 흘리면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여 ‘자활의 길을 찾는 우리에게 동정을 못할망정 모략중상이 웬 말이오 …. 사회는 이렇게도 냉정합니까’ 하고 격분된 어조로써 진정한 바 있었는데, 관계당국에서는 하루빨리 개간사업에 종사하는 상이군인들에게 적극적인 원조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민주신보 195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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