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꽃 문화의 디지털 형상화 사업
매화
봄전령
곤음이 힘을 부리는 것 막기 어려워
만물이 뿌리로 돌아가 쉬이 찾지를 못했는데
어젯밤 남쪽 가지에 흰송이 하나 생겨났기에
향 피우며 단정히 앉아 하늘 끝을 처다보네
坤陰用事政難禁
萬彙歸根未易尋
昨夜南枝生一白
焚香瑞坐見天心
아직 온 천하가 풍설에 덮여 있는 겨울의 끝머리에 백화에 앞서서 먼저 봄소식을 알려주는 꽃이 매화이다. 매화는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을 알리는 전령인 것이다. 다 썩은 듯 한 고목에서도 봄이 가까우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 은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봄의 등불을 켜준다. 음력 정월, 문간 대문에 써 불이는 춘련(春聯)의 구절에서 보듯 매화가 몇 송이 피는 것은 봄을 알리는 전령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이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는 봄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숭인, 「매화(梅花)」, 『도은집(陶隱集)』
불법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으니
계림에 봄빛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구나
영리한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모례(毛禮)의 집 매화에 먼저 꽃을 피웠네
雪擁金橋凍不開
鷄林春色未全廻
可怜靑帝多才思
先著毛郞宅裏梅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사천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헌상에 나타난 매화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24년(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라는 기록이다. 승려인 일연(一然)은 『삼국유사』에서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것을 매화로 상징하여 표현하였다. 이 시는 신라의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을 나타낸 것이다. 즉 일연은 불교가 들어온 사실을 시화(詩化)하면서 늪은 상징적 수법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눈 덮인 금교와 계림은 아직 불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신라 땅을 가리킨다. 봄은 불법을. 그리고 봄의 신인 청제는 법신(法身)을 상징한다. 그 법신이 모례(毛禮)의 집 매화꽃으로 화현(化現)된 것이다. 즉 여기에서 매화꽃은 불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진섭, 「매화찬(梅花讚)」, 『여성』, 1939년 3월호
선구자의 영혼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찬 돌같이 딱딱한 엄동, 모든 풀, 온갖 나무가 모조리 눈을 굳이 감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어떠한 자도 꽃을 찾을 리 없고 생동을 요구할 바 없을 이 때에, 이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를 한기로 여기지 않고 쉽사리 피는 매화, 이는 실로 한때를 앞서서 모든 신산을 신산으로 여기지 않는 선구자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랄까?
그 꽃이 청초하고 가향이 넘칠 뿐 아니라, 기품과 아취가 비할 곳 없는 것도 선구자적 성격과 상통하거니와 그 인내와 그 패기와 그 신산에서 결과된 매실은 선구자로서의 고충을 흠뻑 상징함이겠고, 말할 수 없이 신산한 맛을 극하고 있는 것마저 선구자다워 재미있다.
매화가 조춘 만화의 괴로서 엄한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것은, 그 수성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 고유의 수종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거니와, 그러므로 또한 매실이 그 독특한 산미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의 자료가 되어 효험이 현전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밖에 없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차가운 돌같이 딱딱한 엄동. 온갖 풀 · 나무가 모조리 눈을 감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이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매화, 이는 실로 선구자적 성품과 상통한다. 압박과 겸제(箝制)의 고난을 이기고 해방과 자유의 그날을 고대하는 선각자의 형상과 흡사하다. 김진섭(金晉燮)은 그의 「매화찬(梅花讚)」에서 매화는 한때를 앞서는 선구자의 영혼에 피어나는 꽃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김진섭, 「매화찬(梅花讚)」, 『여성』, 1939년 3월호
선비
천연한 옥색은 세속의 어두움 뛰어 넘고
고고한 기질은 뭇꽃의 소란스러움에 끼어들지 않네
玉色天然超世昏
高情不入衆方騷
정도전(鄭道傳)은 「매천부(梅川賦)」에서 당시의 선비 하유종(河有宗)의 고결한 인품을 매화에 비유하여 읇고 있다. 그리고 임경빈(任慶彬)은 매화나무는 돈만 많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라 했다. 그들은 돈 버는 궁리만 하느라 인간성이 제대로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매화나무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매화나무는 은둔하는 선비와 낙향하는 선비를 위한 나무로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매화 향내는 선비의 고결한 선비의 발현을 상징한다.
참고문헌
이황, 「호당매화(湖當梅花)」중에서, 『퇴계집(退溪集)』
순결
옥 같은 살결엔 아직 맑은 향기 있어
글을 훔쳤던 달 속의 미녀 항아의 전신인가
玉肌尙有淸香在
竊藥姮娥月裏身
매화는 또 여인의 순결과 정절을 상징한다. 양가의 여인들이 매화와 대나무를 함께 새긴 매죽잠(梅竹簪)이나 매화가 그려진 장도를 즐겨 착용한 것은 이러한 상징성 때문이었다. 사대부 부인의 초상화나 미인도의 배경에는 흔히 매화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 그림에 그려진 주인공의 순결과 절개를 간접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이규보, 「매화(梅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아름다운 여인
군옥산 머리에 제일 아름다운 선녀인가
눈같이 횐 살결 꿈에 본 듯 아리땁네
群玉山頭第一仙
氷肌雪色夢娟娟
매화는 그 청초한 자태와 향기로 인해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되었다. 시에서 빙기옥골(氷肌玉骨) · 선녀 · 달 등의 이미지와 관련해 표현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매화는 미녀 중에서도 천진하고 순결한 인상을 지닌 미녀를 상징한다. 꽃을 미녀에 비유할 경우, 모란과 매화는 아주 대조적인 위치에 있다. 모란이 풍염한 모습에 성장(盛裝)한 미녀의 이미지라면 매화는 가냘프고 청순한 모습의 담장(淡裝)한 미녀의 이미지라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황, 「대월영매(對月詠梅)」, 『퇴계집(退溪集)』
약재
24년 3월에 서울에 우박이 왔다. 7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해치고 8월에는 梅花(매화)가 피었다.
문헌상에서는 고려 문종(1047~1082년) 연간 이전부터 재식되고 있었고 충숙왕 때에는 중엽매(重葉梅)가 수입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볼 때 당대(唐代)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삼국시대에 널리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그때는 매화를 심으면 하나같이 모두가 오얏이 된다고 믿어서 매화를 재배할 때에는 접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매화의 열매를 약용으로 사용했던 중국의 영향으로 관상용보다 실용에 더 비중을 두고 재배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라고 할 수 있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도하(都下)에서는 천엽홍백매(千葉紅白梅), 영남과 호남에서는 단엽백매(單葉白梅)가 심어지고 있었다는 것과 복숭아 대목에 매화를 접목하는 등의 진전된 접목법(椄木法)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김부식, 「대무신왕(大武神王)」,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14 고구려본기
청빈
매화 피었다항 상중에 들어가니
매화 픠다커늘 산중의 드러가니
봄눈 깊었는데 만학(수많은 골짜기)가 같은 빛이라
봄 눈 깁헌듸 만학(萬壑)이 빗치라
어찌하여 꽃다운 향내는 골짜기마다 나는가
어지셔 곳다운 향내 골골이셔 나니
매화나무는 은둔하는 선비와 낙향하는 선비를 위한 나무라 한다. 또 도시의 나무라기보다는 시골의 나무이고 젊은이보다는 명상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성숙한 인간들에게 더 어울리는 나무라고 한다.
매화의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하여 옛 선비들은 매화의 시를 읇고 매화를 그리기를 즐겼으며 매화문이 새겨진 문방을 사용하고 뜰에는 매화를 심어군자의 덕성을 배우고자 노력하며 자신과 동일시하여 청빈한 한사(寒士)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영언유초(永言類抄)」
희망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몰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매화는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언 땅 위에 고운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매화는 온갖 꽃이 미처 피기도 전에 맨 먼저 피어나서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준다. 매화는 창연한 고전미가 있고 말할 수 없이 청고(淸高)하여 가장 동양적인 인상을 주는 꽃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글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정원에 흔히 심어졌고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였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의 문턱에서 꽃을 피움으로써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가져다 주며 힘찬 생명력을 재생시키는 기대를 가지게 해준다. 특히 겨울 동안 마치 죽은 용의 형상과 같은 고목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은 늙은 몸에서 정력이 되살아나는 회춘(回春)을 상징한다. 그래서 매화는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연하장의 그림으로 흔히 등장하고 있다. 매화에 대한 이와 같은 희망·재생 등의 상징성은 일제시대에는 조국 광복의 염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육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매화 향기를 환각하면서 조국 광복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참고문헌
이육사(李陸史), 「광야(曠野)」, 1945년(유고시)
생태
장미과의 낙엽소교목인 매화나무의 꽃이다. 열매는 매실(梅實)이라고 한다. 높이 5∼10m이다. 나무껍질은 노란빛을 띤 흰색, 초록빛을 띤 흰색, 붉은색 등이다. 작은가지는 잔털이 나거나 없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거나 넓은 달걀 모양이며 길이 4∼10cm이다.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고 양면에 털이 나며 잎자루에 선(腺)이 있다. 꽃은 중부지방에서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붉은색을 띤 흰빛이며 향기가 난다. 꽃받침조각은 5개로서 둥근 모양이고 꽃잎은 여러 장이며 넓은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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