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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명진학교석주 기념비

 

 

사립명진학교석주(私立明進學校 石柱) 기념비

 

 

사상초등학교

 

사상초등학교의 소재지는 부산시 사상구 덕포동 693에 있으며 100년을 넘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학교이다.

 

 

사립명진학교 석주1

덕포동 소재의 사상초등학교 건물 정면에 위치한다. 사립명진학교는 구한말 신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학교로서 그 건립연대는  융희 3년 (1909)이라 전해오며 그 근거는 교남교육회에서 발행한 교남교육잡지 (12호)에 전해 오고있다.

 

그 당시 학교는 사상구 괘법동 사상역앞에 건립하였는데 학교의 교문에 세워 놓았던 2개의 석주 중 한 개가 괘내천 개울에 걸쳐서 디딤돌로 사용하던 것을  사상공립보통학교 1회 졸업생이며 학교장을 지낸 장지영 교장선생 발견하여 이를 사상초등학교로 옮겨 놓아 보존하고 있다. 석주는 사상구를 알리는 조형물 안에 놓여 있으며 私立明進學校에서 私는 깨어져 보이지 않는다. 2개의 석주 중 나머지 하나는 慶尙南道釜山釜山沙上面이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사립명진학교 석주2

 

1920년에 일제의 민족교육 말살 정책에 의거 사립명진학교에서 사상공립보통학교로 학교명이 변경된다. 그리고 1923년 6월 현재의 자리에 새 교사가 신축되면서 사립명진학교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사상공립보통학교 제1회 졸업생이며 훗날 이 학교의 교장을 지낸 장지영 교장선생께서 사상역앞 괘내천에서 댓돌로 사용하던 사립명진학교석주를 발견하고 사상초등학교로 옮겨 보관하였다.

 

1920년 8월26일 매일신보 기사 "명진학교의 비경"

 

그로부터 숱한 세월이 흐른 뒤 1986년8월28일에야 사립명진학교의 2대 교장이였던 강대성 교장의 네 손자들이 석주기념비를 세워 학교에 기증하게된 내력을 당시 오두용 교장의 이름으로 새겨져있다. 그동안 학장, 모라, 감전 등 6개교가 분리되었으며 한 때 100학급(1979년) 6,000여명의 학생이 다녔던 기록도 있다고 한다.

한편 기념비의 뒷면에는 1920년 8월26일자 매일신보 기사인 "명진학교의 비경"을 새겨 놓았다. 기사의 내용에는 사상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명진학교의 앞날을 내다 볼 수 없었던 절박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담겨있다.

 

1909년경 부산시내에 초등학교 숫자는 열손가락 꼽을 정도 인점을 고려하면 낙동강하구의 면단위 마을에 사립명진학교가 개교하였음은 지역의 선조들의 교육구국 정신이 얼마나 투철하였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