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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최승희 崔承喜





최승희가 작품 '리리크포엔'에서 춤추던 모습





보살춤 복장을 한 최승희





최승희가 1930년 만든 현대풍의 '학춤'





1937년 최승희가 발표한 '화랑무'





최승희가 1943년 일본 도쿄에서 발표한 '신에게 바친다'는 뜻의 명상 춤 '생찬'




최승희 ( 崔承喜 ) ..... 전설의 무희, 동양의 '이사도라 던컨'

서울에서 출생 숙명여학교를 졸업 1926년 오빠 최승일()을 따라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 무용발표회를 구경한 것을 계기로 그의 연구생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7년과 1928년 연이어 이시이 바쿠 무용단의 경성공연에 출연하여 유명해졌으며, 1929년 이시이와 결별하고 서울에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차렸다. 1930년 제1회 무용발표회를 비롯해 4회의 신작발표회를 가졌으며, 그 후 한성준()에게 고전무용을 배움으로써 창작무용의 뿌리를 조선춤에 두게 되었다. 1931년 문학운동가 안막()과 결혼, 1933년 이시이와 합류하여 1934년 일본청년회관에서 신작발표회를 열어 승무·칼춤·부채춤·가면춤 등 고전무용을 현대화하는 데 성공, 격찬을 받았다.

1936년 영화 《반도()의 무희》에 출연, 4년 장기상영이라는 흥행기록을 남겼다. 이어 1937년 구미 각국에서 순회공연을 하여 '동양의 무희'라는 찬사를 받았고, 1940년 미국을 비롯한 남아메리카대륙까지 진출, 세계적 무용가가 되었다. 광복 후 위문공연을 하였다는 이유로 친일 무용가라는 비판을 받고,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하였다.

출처 : 후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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