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2010년 어느 가을날이었지요. 단풍 곱게 물든 계절 탓도 있었는지 그날따라 부석사는 초입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위 글쓴이처럼 고즈넉한 마음의 호사를 부릴 여유도 없이 인파에 떠밀리며 일주문을 지나 언덕길을 천천히 올랐습니다.
그 길에 안고 가는 기억은 두 가지였습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는 부석사 무량수전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며, 그 기둥의 가운데가 볼록하다고 해서 주심포 양식, 거창한 서양 말로는 엔타시스 양식이라고 가르쳐 주었지요.
(좌) 무량수전 전면 (우) 배흘림기둥
시간이 한참 지나 2011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두 번째 책에 실린 영주 부석사 답사기를 읽었습니다. 유홍준 선생이 서산 개심사, 강진 무위사, 부안 내소사, 청도 운문사와 함께 남한 땅의 5대 명찰로 꼽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라 상찬해 마지않았던 부석사는 이제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가슴 속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부석사 답사기를 마무리하면서 유홍준 선생은 잊을 수 없는 일화 하나를 소개해 놓았습니다. 1992년 7월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순우 전집> 출간기념회가 열렸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전집의 편집책임자인 유홍준 선생이 낭독한 대목이 바로 '부석사 무량수전'이었습니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 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 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해질녘 부석사에서 바라본 풍경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유홍준 선생은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나는 항시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 한 편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왔다. 혹자는 이 글을 일러 너무 감상적이라고, 혹자는 아카데믹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감상적이면 뭐가 나쁘고 아카데믹하지 못하면 뭐가 부족하다는 것이냐고 되받아쳤다. (…) 나는 이 글을 통해 '사무치는'이라는 단어의 참맛을 배웠다. 그렇다! 내가 해마다 거르는 일 없이 부석사를 가고 또 간 것은 사무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동이 있었으니 우리 것에 한없이 무지했던 저조차도 발걸음을 하게 했었던 거지요. 그리고 문득 책장 한쪽에 가만히 잠자고 있던 그 책을 찾아 꺼내 들었습니다. 2002년에 이미 읽어놓고도 기억 저편에 파묻혀 있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그렇게 다시 제게로 왔습니다.
혜곡 최순우
혜곡 최순우(崔淳雨, 1916~1984).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숱하게 만나게 되는 바로 그 이름은 우리에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친숙한 분이지요. 최순우 선생은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찾아내고 알리는 데 일생을 바친 미술사학자요 박물관인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갖은 협박에도 간송미술관의 소중한 보물들을 끝끝내 지켜냈고, 전남 강진군 사당리 가마터의 대대적인 발굴을 통해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고려청자기와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으며,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우리나라 박물관사에 길이 빛나는" <한국 미술 5000년 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선생이 남긴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선생의 아름답고 고결했던 삶은 전기 작가 이충렬의 평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통해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기억했으면 합니다. 조상이 남긴 찬란한 유물들을 지금 우리가 박물관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오늘을 있게 한 것도 최순우 선생 같은 분들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이라는 것을요.
■ 너무나 감상적인? 너무도 아름다운! 최순우의 언어들
사실 미술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하거나 접한 분이 아니라면 최순우라는 이름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 제목도 생소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참 고맙고 중요한 분의 존재가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갈수록 그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선생이 남긴 업적들이 학계에서 어엿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감상적이다, 주관적이다,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선생이 보여준 남다른 심미안과 감수성은 학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물론 많이 보면 더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더 많이 보인다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최순우 선생이 아주 특별한 언어 감각으로 빚어낸 문장들은 이 분야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미문(美文)의 향연이라 할 만합니다.
대표적인 낱말이 바로 '갓맑다'입니다. 최순우 선생이 즐겨 사용한 말 가운데 독보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사전적 의미는 '조금도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하게 깨끗하다'입니다.
예를 들어 고려청자에 관해 쓴 '하늘빛 청자'라는 글에 "이 담담하고 갓맑은 푸른 빛깔은 말하자면 지조의 아름다움이며 이 지조의 아름다움은 과거 조촐한 한국인의 지체의 본바탕을 이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석류모양 주자[靑磁石榴形注子], 고려 12세기, 높이 18.3cm, 최대지름 17.6cm
어느 연구자의 조사를 따르면, 최순우 선생이 한국미를 서술하는 데 사용한 주요 어휘 17가지가 선생의 글에 모두 147차례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갓맑다'가 33차례로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선생의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은 전혀 쓰이지 않는 낯선 표현들이 꽤 자주 등장해서 애를 먹입니다. 그때마다 사전을 들춰보면 분명히 실제로 존재하는 순우리말이거든요.
늣늣하다, 성글다, 울멍지다, 헤식다, 어리숭하다, 해사스럽다, 청징하다… 일일이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줄 수 있는 순우리말 표현을 찾아 고심한 흔적들입니다. 이런 표현들을 한데 묶어서 '최순우 어록'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 어록이 한국미의 주요 특질들을 과거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해주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최순우 옛집 (등록문화재 제268호)
■ 최순우의 혼과 체취가 깃든 성북동 ‘최순우 옛집’
유서 깊은 근대문화유산이 곳곳에서 보석처럼 숨어 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최순우 선생이 살던 옛집이 있습니다. 1930년대 초에 지어진 이 고풍스러운 근대 한옥은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생활한 살림집입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이 죽 살다가 인근 지역 재개발 추세로 헐릴 뻔한 것을 2002년에 시민들이 모은 기금으로 사들여 고치고 다듬어서 2004년에 일반에 개방했습니다. 혜곡최순우기념관이기도 한 이 집은 보존 가치가 큰 근대유산으로 인정돼 2006년 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됐습니다.
나무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참 정겹고 멋스러운 공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툇마루에 앉아 마당 곳곳에서 자라나는 나무와 화초들, 주인의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짚어가다 보면 도심의 시끌벅적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상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현판들도 여전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후원으로 가면 볼 수 있는 사랑방 현판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좌) 최순우 옛집 후원 (우) 사랑방 현판
현판의 글씨는 오수당(午睡堂)입니다. 낮잠 자는 방이란 뜻이지요. 최순우 선생은 1976년에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단원 김홍도의 글씨 첩에 실려 있는 글씨를 판각해서 사랑방 현판을 만들어 달았습니다. 선생이 1960년대에 이 서첩을 조사해서 단원 김홍도가 태어나고 죽은 해를 새롭게 밝혀낸 일은 유명합니다.
'오수당'은 단원 김홍도의 당호(堂號)로 여겨지는데요. 당호란 어떤 사람이 머무는 집의 이름을 그 사람의 이름처럼 대신해서 부르는 호칭입니다. 가령, 우리가 흔히 신사임당이라 부르는 사임당 신 씨의 바로 그 '사임당'이 당호입니다. 글씨를 가져와 현판을 만들었을 정도니 얼마나 애정이 깊었는지 알 만합니다.
■ 박물관에서 만나는 ‘최순우가 사랑한 보물들’
공교롭게도 현판 글씨의 원문이 실린 서첩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난 4월 27일은 최순우 선생이 탄생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생일이었어요. 이를 기념해서 선생이 몸담았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이라는 제목으로 기념 프로그램을 마련한 겁니다.
생전에 유달리 아끼고 좋아했던 우리 문화재와 선생이 남긴 글을 나란히 소개해 선생의 생각과 애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진 프로그램인데요. 여기에 김홍도의 글씨 첩이 나왔습니다.
김홍도의 글씨 첩[金弘道筆書帖], 조선 18~19세기 초, 세로 34.9cm, 가로 23.6cm
시대별 전시실을 죽 돌며 한눈에 훑는 방식에 익숙한 관람객에게는 결코 친절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만, 박물관 이곳저곳을 답사하듯 보물찾기하듯 순례하면서 최순우 선생의 뜨거운 마음과 심장이 가 닿은 유물들을 만나는 일은 색다른 감흥을 선사합니다. 21점 가운데 선생의 아름다운 표현이 어우러진 빛나는 유물 몇 가지를 추려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돌함과 뼈단지, 통일신라 9세기, 돌함 높이 43.0cm, 뼈단지 높이 16.4cm, 국보 제125호
"화사한 장식과 무던스럽게 빚어낸 둥근 형과 선의 감각은 한국적인 양식을 신라인들이 보여준 좋은 예였다고 할 수 있다."
김두량 <긁는 개[黑狗圖]>, 조선 18세기, 세로 23.0cm, 가로 26.3cm
"가려운 데를 발로 긁적거리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개의 모습에 익살기가 넘나고 있으며 이러한 화흥(畵興)을 일으켰던 남리의 인품이 엿보여지는 듯도 싶다."
나전칠 봉황 꽃 새 소나무무늬 빗접, 조선 18~19세기, 높이 27.0cm, 너비 26.7cm, 길이 27.4cm
"소나무에 대나무 가지가 돋았는가 하고 보면 대나무 가지와 소나무 가지가 아래 위에서 서로 엇갈려서 우연이 아닌 멋가락을 피워 주고 있다."
철조불두[鐵造佛頭], 고려 10세기, 높이 38,5cm
"너그럽고도 앳된 얼굴의 싱싱하면서도 그윽한 미소 속에 스며진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참사랑의 간절한 뜻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무란무늬 항아리, 고려 12~13세기, 높이 19.7cm, 입지름 19.7cm, 최대지름 34.5cm, 국보 제98호
"크고도 안정된 굽다리 위에 탐탁스러운 몸체가 편안하게 앉아서 넓은 입을 호연하게 벌리고 있는 품이 마치 속이 얼마나 편안한가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최순우 선생이 남긴 글을 모아 펴낸 책의 제목입니다.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다가 다음 대목에서 눈이 멈췄습니다. "한국적이란 말은 한국 사람들의 성정과 생활양식에서 우러난 무리하지 않는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호젓한 아름다움, 그리움이 깃들인 아름다움, 수다스럽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아울러서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생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했던 그 고운 마음의 결이 문장 하나하나에 오롯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생전에 선생과 인연을 맺었던 도자기 전문가 윤용이 선생도 책에서 두꺼비 모양의 연적을 설명하면서 이런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우연히 집으로 들어온 두꺼비에게 먹이를 주고 추운 겨울에는 큰 독에 모래를 채운 보금자리까지 마련해주며, 두꺼비의 점잖음을 배우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순우 선생이 여유롭고 점잖았음은 여러분도 잘 아는 바일 겁니다."
선생은 그런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남긴 분입니다.
최순우 옛집에서 해마다 열어온 시민축제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5월 17일부터 31일까지 최순우 옛집이 마련한 시민축제 <오감(五感)>은 성북동 답사, 베틀 짜기 체험, 동화 읽기, 클래식 음악회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집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최순우 기념 프로그램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도 연말까지 이어집니다. 그냥 덧없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사람, 그 이름, 최순우를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