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고개 이용객 목마름 풀어주던 <냉정샘>
냉정고개 이용객 목마름 풀어주던 <냉정샘>
부산 사상구 주례2동에 ‘냉정(冷井)’이란 지명이 있습니다. 냉정은 냉정우물, 냉정샘터등으로 불리는데 부산 사상구의 역사적인 명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산 사상구 주례2동에 자리한 냉정샘.
냉정에 관한 역사와 유래를 자세히 알려주는 문헌상의 기록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통상 소문을 통해서 전해오는 냉정에 관한 내용을 보면 냉정은 가야에서 주례로 넘어오는 엄광산 산등성이의 고개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자연샘입니다. 이 때문에 샘물 뒤쪽에 자리한 가야와 주례 사이의 교통로에 해당하는 고개를 냉정치, 즉 냉정고개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쪽의 마을은 냉정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깨끗아 단장한 냉정샘터.
이 냉정샘물은 예로부터 냉정고개를 오가는 행인들의 목마름을 풀어주는 귀한 샘터이자 휴식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부산장, 동래장, 하단장, 구포장, 김해장 등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물이 시원하고 맛이 좋기로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조선 숙종(1714년) 때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에 보면 “조선의 열세 개 도 가운데 물이 맑고 시원하며 감미로운 곳이 3~4개 소가 있는데 그 가운데 냉정동의 물맛이 천하에 일품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냉정 유래 알림판.
일본 막부시대(幕府時代)에 지방의 제후들이 다도(茶道)에 심취하여 차를 끓이는 데 쓰는 물인 다용수(茶用水)를 조선까지 와서 구해 갔다고 합니다. 조선 물 가운데 가야산의 물이 좋다고 찬미하였는데 이 가야산이 주례동 동쪽의 가야리 뒷산이며 이 산의 다용수가 바로 냉정샘터의 물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도시로 개발되어 대규모 학교와 주택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하수가 오염되고 물의 성분이 달라져 마시지는 못하고 주민들의 빨래터로만 이용되고 있습니다.
관할 사상구에서는 1999년 이 냉정샘터를 새롭게 정비하고 정화사업을 펼쳐 깨끗이 단장해 놓고 있습니다.

여건이 되면 냉정샘터를 찾아가서 냉정 이름 유래와 역사 흔적을 더듬어 보면 어떨까요? 도시철도 2호선 냉정역에 내려서 3번이나 5번 출입구로 나와 경남정보대학교 방향으로 백여 미터 올라가면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냉정고개 이용객 목마름 풀어주던 <냉정샘>
부산 사상구 주례2동에 ‘냉정(冷井)’이란 지명이 있습니다. 냉정은 냉정우물, 냉정샘터등으로 불리는데 부산 사상구의 역사적인 명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산 사상구 주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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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유감인 것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냉정샘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나 정작 택리지에는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막부시대(幕府時代)에 지방의 제후들이 냉점샘물을 길어가 다용수(茶用水)로 사용하였다고 이러한 기록은 일본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냉정샘이 직접 언급된 적이 없는데도 냉정마을 주민들의 주장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아래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 구전(口傳)과 지역 전통: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냉정샘의 물맛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며, 자연스럽게 "이중환도 인정한 물맛"이라는 전통적인 신념으로 자리 잡았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 이야기는 종종 실제 기록과는 별개로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지역적 자부심: 냉정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자연 환경과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 이중환 같은 학자가 이를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가치를 강조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 잘못된 정보의 확산: 구체적인 출처를 확인하지 않고 널리 퍼진 잘못된 정보가 지역의 "사실"로 자리잡은 경우도 흔히있다. 이중환의 이름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의 권위를 빌려 냉정샘의 가치를 부각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배경에는 인간의 기억, 구전, 그리고 집단적인 정체성이 얽혀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