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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승원-봉정사

jaunyoung 2024. 6. 28. 07:47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본정사

사찰소개

 


    •                                                                                  봉정사 전경
    • 봉정사(鳳停寺)는 경상북도 안동시 천등산에 위치한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에 속한다.
      천등산(天燈山)은 원래 대망산(大望山)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能仁大師)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대사는 절을 지을 곳을 찾으려 도력을 발휘해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리니 지금의 봉정사 자리에 와서 머물렀다고 한다. 때문에 봉황[鳳]이 머물렀다[停] 하여 봉정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 영산암
    • 봉정사는 안동뿐만 아니라 경상북도의 명소로,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가람을 지니고 있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극락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수련과 휴식 등 현대인들에게 산사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과 방문이 있었던 곳인데 고려시대에는 고려 태조(太祖)와 공민왕(恭愍王) 등이 행차하였고, 최근 1999년에는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의 전통마을을 방문하면서 봉정사에 들러 우리의 불교 문화의 일단을 살펴보고 갔는데, 이로 인해 봉정사는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봉정사의 산내암자로는 영산암, 지조암, 중암 등 3개 암자가 있다.
    •                                                                         뒤편에서 바라본 봉정사

천등산의 자연환경

  • 천등산(天燈山)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과 북후면에 걸쳐있는 해발 574m의 산이다. 산세는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저산성 구릉지형으로 북쪽의 불로봉, 남쪽의 상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형성되어 있다. 식생은 대부분 능선부의 소나무를 우점종으로 하는 침엽수림과 계곡부의 참나무림 및 활엽수림을 이루는데, 가시적인 경관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소나무림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大望山)”이라 불렀는데 봉정사의 창건설화에 의하면, 능인대사가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고, 산 이름은 “천등산”이라 하였다고 전해져 사찰의 창건과 더불어 현재의 산명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 진입로 소나무림
  • 봉정사는 천등산의 남쪽 산중턱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풍수지리를 보면 동·서쪽의 산줄기가 서로 엇갈리게 교차하여 물이 모이게 되는데, 이와 같은 곳을 교쇄명당(交鎖明堂)이라한다. 특이하게 외백호(外白虎)가 안산(案山)을 이루어 내백호(內白虎)의 약한 기운을 보완해주며, 내룡은 넓적하게 내려오기 때문에 좌우로 펼쳐진 가람을 형성하게 되었다. 봉정사의 조망 포인트는 대웅전 뒤편 내룡에서 가람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를 보는 것과 우화루 앞에서 느티나무 사이로 바라보는 것이다.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만세루 앞 소나무로 수령이 213년이다. 이 나무는 수령에 비해 수형과 수세가 양호하여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만세루 앞 소나무(보호수)

 

봉정사의 역사

    •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창건주에 대한 내용은 기록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양법당중수기(兩法堂重修記)」의 내용에는 봉정사의 창건주가 의상대사(義湘大師)라 전하고, 극락전의 상량문에는 능인대사(能仁大師)가 창건주라고 적혀있다.

      이 두 기록은 조선 중기에 작성된 것으로 절의 역사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서이며, 이러한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각색되어 창건설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능인대사는 의상대사의 제자이고, 『삼국유사(三國遺事)』등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귀국 후 처음으로 창건한 절이 부석사라고 하는데 봉정사가 세워진 672년은 부석사 보다 4년 앞선 시기이므로 봉정사의 창건주는 의상 대사보다는 능인대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봉정사 극락전 편액
    •                                                                목조관세음보살좌상 - 문화재청
    • 창건 이후 절의 역사는 정확히 전해지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전각 등으로 볼 때,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높은 사격을 지니고 법등이 지속되었음이 분명하다. 고려시대의 유물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목조관세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과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들 수 있다. 목조관세음보살좌상은 사찰에 전하는 「대웅전관음개금현판(大雄殿觀音槪金懸板)」과 1753년에 쓰여진 「중수원문(重修願文)」을 통하여 1199년(고려 신종 2)에 처음 조성되어 1363~64년 사이와 1751~53년 사이에 중수된 상임을 알 수 있다. 양식적으로도 이 관음보살상은 중국 남송대의 불상이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나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비교 된다. 따라서 이 상은〈대웅전관음중수현판기〉에 기록된 대로 승안(承安) 4년, 즉 1199년 무렵에는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극락전의 경우 1972년 중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 고려 후기인 1363년(공민왕 12) 3월 전각의 지붕을 중수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극락전은 적어도 그보다는 앞선 시기인 고려 중기의 건물로 생각된다.

      봉정사는 임진왜란 때도 화를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최근까지도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져 본래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연표
     연대                                     내 용
672년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대덕이 창건
1199년 목조관세음보살좌상 조성
1363년 극략전의 옥개부를 중수(1972년 극락전 해체·복원 시 상량문 발견, 극락전의 건립연대는 적어도 1200년대 전후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인정)
1516년 퇴계 이황이 사촌동생 이수금과 함께 절에 머물며 공부함, 일주문 아래 계곡에 있는 명옥대는 본래 낙수대 였는데 이 무렵부터 이황이 고쳐 부른 이름임
1616년 고금당율 고쳐지었고, 1625년 3월에는 용수사의 전 주지 축담 스님이 퇴락한 대장전율 중수
1712년 대웅전의 후불도률 조성
1809년 승려 대영, 재익, 지원, 서생 등이 힘을 모아 극락전과 대웅전을 중수
1863년 등촉계의 시주금으로 전각 일부를 수선
1882년 현판을 고쳐 칠합함
1969년 고금당을 해체·복원
1972~1975년 극락전을 해체·중수
1999년 영국 여왕 엘려자베스 2세가 방문
2000년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 과정에서 상량문 발견,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 고려 말에 제작했다는 묵서가 발견됨

 

봉정사의 가람배치

* 주요전각 클릭 시 관련설명이 나옵니다.

봉정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36동 외 3개의 암자로 구성되어 있다. 672년(신라 문무왕 12)에 능인대덕이 창건하였으며 이 절에 의상이 화엄강당을 지어 제자들에게 법을 전했다고 한다. 이후 1363년(고려 공민왕 12)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봉정사의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유산으로 꼽힌다. 극락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 등의 건축물이 잘 남아있으며 대웅전과 마당, 그리고 만세루를 넘어 자연으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빼어나다.

극락전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유명하며, 현재 국보 제15호로 지정되어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다. 건물의 정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내부의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 양식적으로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순한 짜임새, 내부 가구의 고격(古格) 등이 특징이다. 또한 부재 하나하나가 모두 과학적이면서 미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 건물의 연혁을 적은 「상량문」 등이 발견되었다. 즉 건립 후 첫 중수는 1363년으로서 적어도 이때보다 앞선 고려 중기에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목조 건축물을 한번 세우면 다시 중수하기까지의 기간이 대체로 150년에서 200년 정도라고 볼 때 극락전의 경우 1200년 경 혹은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신축하였을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다. 건물의 주두(柱頭)와 소로, 첨자 등의 각 부재에서는 이 보다 앞선 통일신라의 양식이 발견되기도 한다. 1625년에 다시 중수를 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대장전(大藏殿)이라고 적고 있어 이름으로 보아 경전 판목을 보관하는 건물로 용도 변경이 있었던 것 같다.

  :: 관련기관 ::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재청  선암사  대흥사  법주사  마곡사  통도사  봉정사  부석사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공주시  순천시  안동시  영주시  양산시  보은군  해남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ICOMOS 한국위원회  UNESCO World Heritage Center  ICOMO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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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의 국가유산 

 
현재 봉정사의 지정문화재로는 국보 2건, 보물 6건, 시도유형문화재 3건, 시도민속문화재 1건, 문화재자료 1건 등이 있다.
 
연번                종목                                                                  명칭                                                           시대

               

1 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 고려시대 (12~13C 추정)
2 국보 제311호 안동 봉정사 대웅전 조선시대
3 보물 제448호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조선시대
4 보물 제449호 안동 봉정사 고금당 조선시대
5 보물 제1614호 안동봉정사영산회상벽화 조선시대(1435년 추정)
6 보물 제1620호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고려시대 (1199년)
7 보물 제1642호 안동 봉정사 영산회괘불도 조선시대 (1710년)
8 보물 제1643호 안동 봉정사 아미타설법도 조선시대 (1713년)
9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82호 봉정사삼층석탑 고려시대
10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25호 봉정사만세루 조선시대
11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28호 봉정사소장유물 조선시대
12 경상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126호 봉정사영산암 조선시대
13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4호 봉정사동종 조선시대 (1813년)

                                                                                                                                                           *2015년 6월 기준

봉정사 문화재 자세히 보기

 

산사의 유형유산 ㅣ 산사의 문화유산 ㅣ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ㅣ 세계유산등재 추진위

 

www.koreansansa.net

 

봉정사의 인물

능인 (能仁, 미상~미상)
  •                                                                                영가지 및 책판
  •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봉정사의 창건주이다. 의상십처(義湘十哲)라 불리는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의상대사는 신라 화엄종을 개창한 고승으로 신라 땅 곳곳에 가람을 창건하여 화엄 사상의 전파에 힘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3,000명이라는 많은 제자가 대사의 법을 이었고, 그 가운데 열 명의 제자가 특히 뛰어나 대덕(大德)이라 하였다. 능인대덕은 바로 이 10대덕 중의 한 사람이다.

    의상대사와 능인의 관계 때문에 봉정사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봉정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화엄십찰(華嚴十刹)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봉정사의 창건주는 능인이며, 능인이 의상대사의 큰 제자였으므로 절의 창건주가 의상 대사라는 이야기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극락전 상량문에서도 능인이 봉정사의 창건주라고 적고 있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능인은 670년(문무왕 10)에 같은 의상의 제자인 표훈(表訓) 등과 함께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표훈사(表訓寺)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영가지(永嘉誌)』 권2 「산천(山川)」 조에 따르면, 능인이 한 굴에서 숨어 지내며 세속과 멀리 하였는데, 영주 부석사의 승려 1,000여 명이 그를 만나기 위해 몰려왔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아쉬움에 돌아가면서 돌을 모아 한 곳에 쌓았는데, 이것이 곧 지금의 학가산 석탑이라고 한다.
    의상대사의 화엄사상을 전수하여 후세에 의상의 학덕을 선양하였으며, 통일기의 신라불교를 융성하게 한 고승들이었다.
※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봉정사의 설화

천상의 옥등이 밝히는 산, 천등산 봉황이 내려앉은 자리, 봉정사
  • 절이 들어선 천등산을 옛날에는 대망산(大望山)이라 불렀다. 산 정상 가까이에 거무스름한 바위가 하나 있고, 이 바위 아래 동굴이 있는데 천등굴이라고 불리 운다. 능인대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늘 이곳에서 깨달음을 향한 수행 정진에 몰두하였다. 이렇게 십년을 줄곧 도를 닦기에 여념이 없던 어느날 밤 홀연히 아리따운 한 여인이 앞에 나타나 옥을 굴리는 듯한 낭낭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여보세요. 낭군님"

    미처 스님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보드라운 손길이 능인대사의 손을 살며시 잡았고, 눈을 들어 보니 과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인은 다시 한 번 맑은 목소리로 능인을 불렀다.
    "낭군님, 소녀는 낭군님의 지고하신 덕을 사모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낭군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사옵니다. 부디 낭군님을 모시게 하여 주옵소서."
  • 천등산 천등굴
  • 여인의 음성은 간절하여 가슴을 흔드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능인대사는 십년을 애써 쌓아온 수련을 한 여인의 간청으로 허물 수 없었다. 능인은 준엄하게 여인을 꾸짖었다.
    "나는 안일을 원하지 아니하며 오직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의 공적을 사모할 뿐 세속의 어떤 기쁨도 바라지 않는다. 썩 물러나 네 집으로 가거라!"
  • 여인은 계속 유혹을 하며 쉽게 돌아가지 않았지만, 스님은 끝내 거절하였으며 오히려 여인에게 깨달음을 주어 돌아가게 했다. 여인이 돌아서자 구름이 몰려드는가 싶더니 이내 여인은 사뿐히 하늘로 오르며 사라졌고, 그곳에는 산뜻한 기운이 내려와 굴 주변을 환히 비추었다.

    "스님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제 스님의 깊은 의지를 알았으니 부디 깨달음을 이루시길 빕니다.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옥황상제의 등불을 남기고 떠납니다.”
    곧 바위 위에 커다란 등이 달려 어둠을 쫓고 대낮같이 굴 안을 밝혀주고 있었다. 능인대사는 그 환한 빛의 도움을 받아 더욱 열심히 수련을 하여 득도하였다고 한며, ‘하늘에서 내려온 등의 덕택으로 수도하였다’하여 그 굴은 '천등굴' 대망산을 '천등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능인대사는 긴 수행을 마치고 절을 세울 곳을 찾아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려 보냈다. 봉황은 학가산을 거쳐 지금의 봉정사 절 자리에 앉았고, 마침내 672년 가람을 세워 절 이름을 ‘봉황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봉정사라고 하였다.
                                                                                                                                    ※ 사진출처 : 안동관광정보센터 출처
 

봉정사 안내

봉정사 안내
  •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 연락처054-853-4181
  • 홈페이지http://www.bongjeongsa.org
오시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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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 이용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안동방향 → 봉정사
  • 대중교통 이용
  • - 안동터미널 혹은 안동역까지 대중교통 이용
  • - 안동 시내버스 이용
  • 버스시외버스터미널 출발봉정사 출발비고 
    서후봉정사(51번) 06:10 06:50 봉정사
    08:25 09:20 봉정사
    10:50 11:50 봉정사
    13:40 14:45 봉정사
    17:20 18:00 봉정사
    19:00 19:20 봉정사
출처; http://www.koreansansa.net/ktp/sansa/sansa_020601.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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