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이야기

[사찰성보문화재 50選] ⑮예천 용문사 팔상도

jaunyoung 2021. 8. 29. 13:57

[사찰성보문화재 50選] ⑮예천 용문사 팔상도

  •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
  •  승인 2021.05.31 14:52
  •  호수 3667

부처님 탄생에서 열반까지…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보물 제1330호 예천 용문사 팔상도.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24㎝, 가로 180㎝. 조선 숙종 35년(1709)에 제작된 팔상도 전 장면이 한 폭에 두 장면씩 그려져 총 4폭에 온전하게 남아 있다. ①‘비람강생상’과 ‘도솔래의상’ ②‘유성출가상’과 ‘사문유관상’ ③‘수하항마상’과 ‘설산수도상’ ④‘쌍림열반상’과 ‘녹원전법상’.

 

초록으로 빛나는 거리에 형형색색 나부끼는 연등이 삭막한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사찰은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이번에는 석가여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그린 ‘예천 용문사 팔상도’를 택했다. 무명에 빠져 허덕이며 사는 중생들에게 진리의 빛을 선사한 석가여래의 생애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가여래가 세상에 오신 이유와 우리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처님 생애 여덟 장면으로 압축


사찰에는 석가여래를 모신 법당이 있다. 대웅전(大雄殿)은 석가여래의 다른 호칭인 위대한 영웅을 모신 집이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다. 팔상전(八相殿) 또는 영산전(靈山殿)도 석가여래을 모시는 법당이다. 특히 팔상전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가 걸려 있다. 팔상도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개의 장면으로 압축하여 그린 그림이다. 불교회화 가운데 가장 서사적이며, 중생들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이해하고 삼보에 귀의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팔상(八相)이라는 것은 인도에서 시작됐다. 석가여래의 입멸 후 구도의 길에서 방황하는 많은 불교도들이 스승을 그리워하게 된다. 상실감에 빠진 이들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자주 찾게 되는 곳, 석가여래를 기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있었다. 바로 석가여래가 탄생한 룸비니, 깨달음을 이룬 부다가야(보드가야), 처음으로 설법했던 사르나트, 열반에 들었던 쿠시나가라 등이다. 이러한 장소와 거기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이 8장면으로 요약되어 큰 탑의 난간이나 문, 혹은 석굴사원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표현됐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된 여러 장면들을 보고서, 스승의 위대함에 경외를 표하고, 스스로를 위무하며 더욱 확고한 신앙심을 갖게 됐다. 조각이나 그림으로 표현된 내용들을 직접 보면서 느낀 감동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대중들에게 전달력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도에서 중요한 석가여래의 8장면은 우리나라와 같았을까. 그렇지 않다. 인도에서 팔상은 탄생, 성도, 설법, 열반의 4장면에 석가여래가 신통력으로 여러 이적을 보이는 장면이 더해졌다. 사위성에서 이교도를 불교에 귀의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적을 이루신 대신변(大神變),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리천에서 설법한 뒤 하강하는 종도리천강화(從恂利天降下), 라자그리하(왕사성)에서 술 취해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를 항복시킨 취상조복(醉象調伏), 원숭이가 석가여래의 사발을 찾아서 꿀을 가득 채워 공양했다는 원후봉밀(猿猴奉蜜)등 이다. 포교를 위해 석가여래께서 보여준 여러 가지 이적을 나타내는 장면이 당시에는 더 선호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부처님 생애의 8장면 구성과 내용은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한국의 팔상도는 어떠한 내용으로 그려졌을까. 현재 남아 있는 팔상도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대표작으로는 용문사(1709년), 송광사(1725년), 쌍계사(1728년), 통도사(1775년), 흥국사(1869년) 등이 있다. ‘예천 용문사 팔상도(八相圖)’는 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인 1709년(숙종 35)에 조성된 것이다.


조선 후기 팔상도에 나타나는 그림의 연원을 찾아 올라가면, 조선 전기의 판화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세조가 즉위한 후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 편찬한 <월인석보(月印釋普, 1459)>에 팔상도가 남아 있다. 이를 모본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史跡, 1673)>에 그려진 다양한 장면들을 더해서 팔상도가 그려졌다.

 

한 폭에 두 장면씩…온전히 보존


‘용문사 팔상도’는 첫 번째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부터 여덟 번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 이르기까지 팔상도의 전 장면이 한 폭에 두 장면씩 총 4폭에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려진 장면들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 듯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1폭은 석가여래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과 석가여래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다. 제2폭은 태자가 성문 밖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이다. 제3폭은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과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이다. 마지막 4폭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과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이다.


이처럼 ‘용문사 팔상도’는 석가여래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황토색 바탕…밝고 따뜻한 색채
인물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 ‘수작’


‘용문사 팔상도’는 비단에 안료로 채색하여 그려진 것이다. 바탕색은 황토를 써서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인물과 사물에는 붉은색과 녹청색을 주로 사용했다. 밝고 선명한 색상과 다채로운 채색이 아름답다. 한 장면에 여러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구획이 필요한 부분은 파스텔톤의 구름을 이용하여 나누었다.


한 폭의 그림에는 2~3장면만을 강조하여 비교적 간단하게 요약하여 구성했다. 예를 들면 도솔래의상에서 보듯이 상하 2단으로 나누었다. 상단에는 구름 속 주악천녀(奏樂天女)에 싸여서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꿈속으로 내려오는 호명보살(護明菩薩) 일행을 나타내었다. 하단에는 궁전 누각에서 잠을 자는 마야부인 일행만 배치했다. 이러한 단순한 구도는 팔상도 각 폭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렇게 인물들을 간소화시키면서 화면에 중요 인물이나 대상들을 모두 큼직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인물들을 원만하면서도 개성 있고 활달하게 묘사했다.


이 불화는 예천 용문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용문사는 870년(경문왕 10)에 두운(杜雲)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대장전(大藏殿)과 윤장대(輪藏臺, 국보 제328호)로 유명한 곳이다. 4계절마다 그 전경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찾아와 시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번 태어나고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자연에 순응하면서 여유 있게 살라고 스스로 격려해 보고 싶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등(燈)을 올리며 어떠한 소원을 빌어볼까. 연등을 밝힌 사람들의 조그마한 소원 하나는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불교신문3667호/2021년5월25일자]

출처: [사찰성보문화재 50選] ⑮예천 용문사 팔상도 - 불교신문 (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