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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의 출근 길

jaunyoung 2020. 5. 29. 15:51

사상공단은 예로부터 지대가 낮아 여름철 장마 때나 집중 호우가 발생하면 사상공단이 물바다가 되는 일들이 되풀이될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

 

1989년 07월 29일 집중호우로 사상공단이 완전 침수된 상태를 KBS 취재 보도한 기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사상공업 지역은 11호 태풍 주디(judy)의 내습으로 2,000여개의 업체가 물에 잠겼다. 사상공단의 국제상사 건물이 2층까지 완전히 침수해 수억 여원 상당의 신발완제품과 기계부품들이 물에 잠긴 것을 비롯해서 주식회사 종용과 샤니 케익 등 1만 5천여 채의 건물이 침수, 1,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내었다. 이처럼 많은 피해를 입게된 이면에는 사상공업지역의 평균 높이는 해발 2. 6m로 인근 낙동강 지정수위의 3m에 비해 오히려 낮은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1989년 7월29일 밤 KBS 9시 뉴스 시간에 보도된 사상공단의 침수 영상을 캡쳐하여 소개한다.

이처럼 학장, 감전, 괘법, 삼락동 등 사상공단이 침수됨에 따라 공단의 근로자들은 침수속에서도 피해를 줄여나갔다. 즉, 각 공장마다 사장에서 부터 근로자까지 힘을 합쳐 공장의 제품을 비롯 자재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는데 땀흘을 흘렸다. 

 

사진 출처: 문진우

1989년 사상공단을 휩쓴 태풍 주디의 피해를 헬기로 취재한 KBS보도 내용은 지금 보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제는 먼 옛이야기가 된지도 오래되었다. 최근  부산의 사진전에서 주디의 기억을 되살릴 수가 있었다.

 

침수된 도로에 택시가 멈춰 서 있는가 하면 버스도 다니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은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다. 이 장면은 부산지역의 사진가 문진우 씨가 1989년 7월 29일 11호 태풍 주디(judy)로 물에 잠긴 부산 사상공단에서 출근하는 근로자들을 담은 것으로 사진전 ‘부산’의 한 작품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모습이지만, 1980년대만 해도 큰비가 내리면 전국 곳곳에 ‘물난리’가 났고, 지대가 낮은 사상공단의 근로자들과 시민들은 이렇게 물살을 가르며 이동해야 했다. 물에 잠긴 길을 따라 묵묵히 일터로 향하는 1980년대 사람들의 뒷모습이 묵직한 감흥을 준다.

사진 출처: 문진우

낙동강하구에 위치한 사상은 3多가 유명하다. 모래(沙)가 많고, 물(水)이 많았으며, 나무(木)가 많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사상을 "3多의 고장"이라고 불렀다. 지명에 모래가 들어 갈 만큼 땅을 파면 모래를 채취할 수 있었으며, 강변 마을인데다 지대가 낮아 물이 많았고, 물이 많은 만큼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포플러 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이다. 특히 감전동에는 괘내천 양안 둑에 속성수인 포플러를 많이 심었으므로 일제 때 일인들은 포플러(poplar)나무가 많은 마을(町)이라 하여 포플러 마을(ポプラ町, 뽀프라 마치)이라 불렀던 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