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어찌 잊으랴…
그날을 어찌 잊으랴…
황소 타며 휴식중인 미군들… 사진연구가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이 수집한 6·25 전쟁 관련 사진 800여점 중 하나. 참전 미군들이 잠시 소를 타며‘전중한(戰中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흙에 빠진 수송기 옮기기…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지갑종 회장이 모은 6·25 전쟁 관련 사진.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3일 수원비행장에 내리다 흙 속에 빠진 미군 수송기를 한국 인부들이 손으로 어올려 옮기고 있다. /지갑종씨 제공
일본에서 훈련중인 '카투사'들… 6·25 직후인 1950년 7월 길거리에서 뽑힌 한국 청년 병사들이 본으로 건너가 후지산 미군‘후지 캠프’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후에 인천상륙작전에 여했고‘카투사’병의 전신이 됐다. /지갑종씨 제공
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네들./연합뉴스
주민들이 배급식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김창룡 특무대장과 홍성기 감독. 1950. 11월, 방첩대(CIC)본부에서 기록영화를 촬영할 당시 홍성기 감독이 사전 연출지시를 하는 장면이다. 16mm 필름으로 제작한 한국 최초의 컬러 극영화인 `여성일기'를 비롯해 `별아 내 가슴에', `춘향전' 등을 연출한 홍 감독은 여배우 김지미의 첫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한국군의 유재흥 소장. 1951. 1.22일 촬영. 한국전 당시 육군참모차장을 지냈으며 71∼73년 국방장관을 지냈다. /연합뉴스
1950년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 사령관. 가운데 인물은 리지웨이 사령관./연합뉴스
한국전 당시 젊은 모습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으로 재직하던 1951년의 모습. /연합뉴스
미 보병 제25사단 병력이 폭격으로 부서진 수원성을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연합뉴스
국군 신병으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모습. 한 바가지의 물로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매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연합뉴스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연합뉴스
1950년12월 3일.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피난민의 행렬. /연합뉴스
한 어머니가 서울 남쪽의 한 마을에서 지뢰 파편에 다쳐 우는 아들을 데리고 미군을 뒤따라가 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