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시장
나무시장
이양하 선생은 자신의 수필집 ‘나무’에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라 예찬한다. 선생은 스스로 분수를 알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현인이고자 했고, 견인주의자로서의 길을 나무의 달관한 듯한 자태에서 찾고 있다. 선생의 나무에 대한 예찬이 각별하나, 어디 이분뿐이겠는가. 한국인 모두 고조선 건국 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壇樹)를 세계수(世界樹) 또는 우주수(宇宙樹)로서 자랑 삼지 않는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곳에 서 있는 이 신단수는 박달나무다.
우리네 산에는 박달나무는 물론 소나무 참나무 녹나무 후박나무 조록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전나무 잣나무 느릅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그리고 넝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교목(喬木) 관목(灌木) 만목(蔓木)이 자라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 조에 “경상도진제경차관이 계를 올려 말하기를 구황식품으로 상수리나무 열매가 으뜸이고 소나무 껍질이 그 다음입니다”하는 기록이 보인다.
소나무 상수리나무를 비롯하여 우리에겐 어느 민족보다도 나무에 얽힌 사연이 많다. 복숭아나무는 귀신이 무서워하기에 집안에 심어놓으면 조상의 영혼을 쫓아버려 좋지 못하고, 자귀나무를 심어놓으면 부부간의 애정이 더해지고, 엄나무는 나쁜 귀신을 물리치며, 석류나무를 심으면 자손이 많고, 딸을 낳으면 마당가에 오동나무를 심어 둔다는 등의 예가 그것이다. 도처에 신내림나무 혹은 신지핌나무인 서낭나무가 있고, 마을마다 동구 밖에 느티나무가 서 있다.
정보화 시대, 다양화 시대인 오늘날 현대인들은 극단적 개인주의, 점점 더 양극화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보편적으로 불안한 미래,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도래로 인한 통제할 수 없는 개방으로 인해 익명의 관계성, 자아 상실, 풍요 속의 빈곤, 소외 등과 같은 고민들을 안고 산다. 그러므로 더욱 이양하 선생이 말했듯 달관한 성자나 현인 혹은 견인주의자와도 같이 나무를 깊이 애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가.
도내 곳곳에서 나무시장이 열리고 있다. 예컨대 홍천의 나무시장에서는 홍천군산립조합원과 조합양묘장 등에서 생산한 산림용 묘목과 조경수 관상수 특용수 등 30만 본을 전시 판매한다. 나무를 옮겨 심거나 새로 심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다. 식목일이 4월 5일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올 봄엔 나무시장에서 나무 한 그루를 사서 마당가에 심어 놓고, 그것이 공간적 정신적 구심력으로서의 개인적인 신단수라 여기며 한 번 생기 있게 살아보지 않으련.
이광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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