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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이 품고있는 통도사 극락암

jaunyoung 2012. 8. 18. 18:36

영축산이 품고있는 통도사 극락암
 
 

불보사찰로 유명한 영축산문 통도사 암자 중의 한 곳인 극락암을 친척의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찾았다. 극락암은 통도사 경내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솔숲에 자리잡고있는 암자이다.극락암을 가르키는 안내판을 지나 미끈하게 뻗은 솔 숲 사잇길로 통과하면서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내린 창으로 들어오는 솔향기를 심호흡을 하며 가득 채울 수 있었기에 첫 인상도 좋았다.

통도사 암자인 극람암의 이모 저모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극람암으로가는 솔숲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극락암 입구로 들어서면 사찰 건물과 그 뒷편에 금강송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너머로 영축산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한데 어울려 선경을 연출하는 듯하다.   
            
영축산~1.JPG
                      극락암 뒷편 금강송 숲과 위용을 자랑하는 영축산
 통도사가 위치해 있는 영축산의 한자 표기는 '靈鷲山'과 '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표기는 「영축산」, 「영취산」, 「축서산」, 「취서산」 등으로 표기되고 있어 통도사를 찾는 분들의 혼동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다.
 

극락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부속암자이다. 1332년(충혜왕 2) 창건하였으며, 창건자는 미상이다. 1758년(영조 34) 철홍(哲弘)이 중창하였고, 극락선원(極樂禪院)은 많은 수행인들을 배출하였다. 1953년 11월 대선사 경봉(鏡峰)이 조실(祖室)로 추대되자 많은 수행승들이 모여들었다.

 


 
극락암홍교3.jpg

 

극락암홍교2.jpg

                                      사찰 입구 오른쪽에 있는 홍교
영축산이 비친다는 타원형 극락연지에는 수련으로 뒤덮혀있고 그 위로 아름다운 무지개다리인 홍교가 놓여있다. 좁은 홍교를 조심스레 지나면 마치 피안의 세계로 가는 듯 하다.


극락암 여여문.jpg

                             극락암으로 들어가는 여여문(如如門)
여여부동(如如不動)은 금강경에 나오는 경문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한결 같아 여여하여 변함이 없다는 여여부동(如如不動)하며, 존재의 실상은 본래 여여한 모습이다

극락암 영취루1.jpg

         극락암의 하나뿐인 누각인 영월루(瑛月樓)로 설법전이라고도 한다.
영월루 현판 옆에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은 깨달은 자는 올바른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올바른 부처님의 마음을 분명히 밝히는 지혜의 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 한다. 정법안장은 진실하고 불편부당한 부처님의 마음이 지혜의 눈으로써 일체 사물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법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정법안장은 불법의 진수를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영축산 극락암9.JPG
칠성신앙과 관련된 수세전(壽世殿)
수세전(壽世殿)은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곳. 신중각, 칠성각, 북극전이라고도한다.
극락암.jpg
'무량수각'으로 불리는  극락암 본전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암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법당(法堂)을 중심으로 연수당(延壽堂)ㆍ정수보각(正受寶閣)ㆍ조사각(祖師閣)ㆍ수세전(壽世殿)ㆍ영월루(映月樓)ㆍ삼소굴(三笑窟)ㆍ여시문(如是門)과 요사채 4동 등이 있다.


극락전의 현판 처마밑에는 극락암, 안쪽 문 위에는 무량수각의 현판이 아래와 같이 있다.
 
 
무량수각 현판.jpg
극락암과 무량수각 현판
조블의 무림님께서 출간한 책에도 나와 있듯  범어사에도 '무량수각' 현판이 모각인 것처럼 이곳의 무량수각 현판에도 '노완'이란 이름이 있지만 추사 글씨의 모각으로 보인다. 사찰에서는 추사의 글씨를 좋아했는 것 같다.
 
 
극락암 우측면.jpg
무량수각 측면으로 다양한 불화로 가득 메워져 있다.
그 앞에 산정약수가 있어 극락암을 찾는 사람들의 목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극락암 조사전.jpg
무량수각 뒷편에 33조사(祖師)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祖師堂)
 
1928년 경봉스님은 통도사 본사에서 걸어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극락암에 극락호국선원(極樂護國禪院)을 개원하고 영축산 자락에 선풍을 크게 떨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선방으로 정수보각(正受寶閣)이 쓰였으나 지금은 조사당(祖師堂)을 이용하고 있다
 
 
극락암 원광재1.jpg
                                 원광재(圓光齋)와 모감주나무
원광재(圓光齋)는 경봉(鏡峰) 스님의 법호인 원광을 따와서 지은 이름으로 경봉스님이 주석하였던 장소앞에 염주를 만드는 모감주나무 노란꽃이 활짝 피어 건물을 가려주고 있다. 일명 염주나무로 불리는 모감주나무는 사찰에 있으니 제격인 셈이다.
 

극락암 삼소굴.jpg
경봉스님이 거처하였던 삼소굴(三笑窟)

‘통도사 군자’이자 ‘영축산 도인’으로 추앙받았던 경봉 스님은 18세에서 85세에 이르는 67년 생애를 소상히 담은 ‘삼소굴 일지’를 남겨 후학들에게 길을 제시할 정도로 섬세했던 당대의 선지식이다. 그래서 삼소굴(三笑窟)은 경봉스님의 체취가 가득한 공간인 셈이다.


 



극락암 스님들.jpg
                 오후 늦은 시간에 마당 돋우는 울력을 하고 있는 스님들
 
이곳의 문화재로는 '극락암 칠성탱'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6호이고, 극락암 석조관음보살좌상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3호이며, '극락암 아미타후불탱' 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4호이다. 또한 극락암 청동반자(靑銅飯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6호이다.
 
 
청동반자1.JPG
극락암 청동반자(靑銅飯子) 
현재 무량수전에 걸려 있는 이 청동반자는 직경 85.5~85.8cm 크기의 대형이다. 측면에 반원형의 고리 두 개가 붙어 있어 원래는 양쪽 고리로 고정시켰음을 알 수 있다. 전면 중앙에는 돋을새김의 태극원문 당좌가 있다. 당좌의 좌우에는 다섯 개의 도드라진 방형틀이 있으며, 그 안에 양각으로 願文을 새겼다.
 
통도사의 암자인만큼  아담한 규모의 극락암은 오밀 조밀하게 금강송 숲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열반하신지 30주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경봉대선사의 체취가 극락암 곳곳에 베여있음이 느껴진다. 영축산이 품고있는 극락암은 호국선원도량으로써 경봉대선사의 정신이 오늘도 이어져 오고있는 곳이다.